[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51. 대학 교수 정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UC얼바인 캠퍼스 전경. 필자가 이곳으로 옮길 때 대다수 미국대학들이 교수 종신제를 도입했다.

  우리나라에선 교수가 65세에 퇴직하는 것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처럼 되어있다. 이는 1980년대 초기까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컬럼비아대학에 있을 때인 1983년 미국 대학의 정년에 획기적인 바람이 불었다. 그 이전까지는 한국의 대학처럼 교수의 정년이 65세로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83년에 정년이 70세로 5년이나 연장됐다. 아마도 정년 연장은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시작됐으며, 짧은 기간 동안 미국 전역으로 확산한 것으로 기억된다. 정년이 70세가 된 이후 불과 2~3년 뒤에 정년 자체가 없어졌다. 얼마든지 대학에 남아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학 교수 종신제가 열린 것이다.

정년이 완전히 없어진 시기는 내가 컬럼비아대학에서 UC얼바인으로 옮긴 시점과 비슷하다.

대학 행정 당국은 정년을 없애 놓고 걱정이 많았던 모양이다. 능력 없는 교수들이 죽을 때까지 자리에 눌러 앉아 있으면 어떡하나, 그 많은 인건비를 어떻게 감당하나 등이 걱정거리였다. 물론 나는 당시 40대였기 때문에 정년이라는 게 있어도 내게는 그 시기가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나이는 먹어도 마음은 젊은 시절에 고정되어 있는 식이다.

캘리포니아 대학 당국이 정년을 없애 놓고 한가지 조치를 내놓았다. 조기 퇴직을 하는 교수한테는 5년치 퇴직금을 한꺼번에 얹어주겠다는 것이었다. 65세에 나간다면 70세에 나간 것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연금이 연간 몇 천 또는 몇 만 달러가 더 나왔다. 그러자 내로라 하는 교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그렇지 않은 별볼일 없는 교수들만 남아있는 꼴이 되었다. 유명한 교수들은 ‘명퇴금’을 챙기고, 더 좋은 대학으로 옮겨갔다. 대학에 비상이 걸렸다. 명퇴를 더 지속했다가는 괜찮은 교수들의 씨가 마를 것 같다며 그 제도를 중단했다. 그 당시 내 주변의 50~60대 쟁쟁한 교수들이 꽤 많이 나갔었다.

대학 당국이 판단을 잘못한 것이다. 종신제를 하면 모두가 ‘죽치고’ 있을 것만 같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교수들 중 20~30%의 좋은 교수는 나가고 70~80%의 보통 교수들은 남았던 것 같다.

종신제가 되니까 교수들의 근무 태도가 달라졌다. 65세면 학자로서 한창인데 정년 때문에 5~6년 전부터 생산성이 확 떨어지는 게 관행이다. 노후 걱정 때문에 다른 직업이나 할 일을 찾기 위해 연구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대학원생들도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교수한테는 오려고 하지 않는다. 이래저래 연구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종신제가 되자 근무 자세가 바뀌었다. 유명한 교수들은 나이가 들면서 연구 생산성이 더욱 오르기도 했으며 유명세 만으로도 대학은 본전을 뽑았다.

종신제가 되어도 은퇴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연구분야가 없어지거나 쇠퇴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나이가 들면서 연구 분야를 180도는 아니라도 계속 바꾸는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나같이 CT에서 PET, 또 MRI로 바꾸면서 이들 기기의 개발 기술을 응용해 뇌과학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나이가 들수록 변신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은퇴해도 노후를 즐길 만큼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변화가 두렵거나 내키지 않는 교수들은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난다.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