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실업자 수가 100만 명에 이른다는 요즘,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이들이 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기업에 입사한 사회초년병들. 허나 사회가 어디 그리 만만한 곳인가. 연수기간 동안 새내기들의 행군은 첩첩산중, 베갯머리는 눈물 반 땀 반이었을 것이다.
"기은창조 190명은 전원 무사도착을 신고합니다.” 강연옥(기업은행 남대문지점 근무)
이런 몸을 이끌고 먼 길을 걷는다는 건 이미 무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기들에게 부담이 되기 싫었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동기들의 몸 상태도 다들 좋지 않았다. 나와 같은 조였던 중국인 신입사원 방각은 낯선 환경에 무리한 탓인지 결국 쓰러져 버리고. 포기해야 하나, 절망적인 생각도 들었다. 그때 한 동기가 말했다. “반장, 쓰러지면 내가 업고 갈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우리 새내기 첫걸음 같이 해요.”
그래,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어. 걷고 또 걷고 계속 걷다보면 목적지에 도달하겠지. 고작 10시간.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하지만 막상 시작하면서, 내 몸도 몸이었지만 나의 욕심 때문에 동기들이 고생한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뒤쳐질까봐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고, 자신의 마실 물을 양보하고, 주저앉으면 업고. 미안해, 정말 미안해.
행군도중 비는 또 어찌나 많이 오던지. 그래도 추적추적 비를 맞으면서 걷다가 먹었던 라면과 우동국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행군 내내 지치지 않고 목청껏 불러댔던 노래, 발에 물집이 잡히고 진물이 나도 빗물이라고 우겨대던 동기들의 함성도 잊을 수 없다. 그래, 가 보자. 이렇게 서로에게 기대기도 하고, 또 끌어주기도 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서로를 믿는 마음일 테야.
동기들의 따뜻한 보살핌과 세심한 배려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은행 문을 열고 힘차게 소리쳤다. “기은창조 190명은 전원 무사도착을 신고합니다.”
나는 지금 남대문 지점에 근무하고 있다. 벌써 한 달 전의 일이지만 그날의 영상이 지금도 또렷하다. 따가운 햇살 아래 내 의지와는 다르게 발이 풀릴 때마다 내 손을 잡아 일으켜 주었던 동기들,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스스로를 다그치며 다시 우뚝 섰던 내 다리.
40km 행군. 그것은 내게 단순한 발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앞으로 나를 지탱할 하나의 주문이다. “나는 루키다. 나는 다 할 수 있다. 내게 불가능이란 없다.”
“나는 루키다. 나는 최고다.” 이승윤(반월중앙지점 근무)
가벼운 스트레칭과 힘찬 구호가 끝난 후, 약 10시간 동안 진행될 행군의 첫 걸음이 시작됐다. 190명의 동기들은 각각 15개조로 나뉘어서 구호와 조가를 부르며 호기 있게 출발했다. 그러나 약 4시간 쯤 걸었을 때부터 많은 동기들이 처음의 패기와 열정보다도 몰려오는 피로감과 갑작스런 소나기로 서서히 지쳐갔다. 몇몇 동기들은 너무 힘들어 주저앉기도 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배낭을 대신 들어주며 계속해서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우리의 1차 목적지인 남산에 이르렀다.
재충전을 한 우리는 명동 쪽으로 향했다. 이제 곧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생각에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고, 명동에 들어가서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회사 홍보를 위해서 길거리 마케팅에 나섰다. 땀에 범벅이 된 초라한 행색도, 난생 처음 해본 길거리 홍보도 부끄럽지 않았다. 40km 행군을 우린 해낸 것이다. 우리에겐 그 자부심과 열정만이 가득했다.
요즘 새로 맡은 업무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연수과정을 생각하면 “이쯤이야”라는 생각에 저절로 힘이 솟는다. “나는 루키다. 나는 최고다.”
장치선 객원기자 chrity19@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