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 범행 동기는 도박-부모살해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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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미국유학 6개월만에 돌아온 장남이 유산상속을 노려 부모를 살해했다.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은 그러나 웬만한 부유가정에서 흔히있을수 있는 일로 시작됐다.
90년2월 서울H고교를 졸업하고 지방 모대학 토목과에 입학한朴漢相군(23)은 국내에 있을땐 공부를 못해 부모속을 썩였지만포악한 아이는 아니었다.
지난해 7월 방위병으로 제대한 한상군은『지방에서 학교다니기가힘들다』며 복학을 하지 않은채 빈둥거렸고 보다못한 아버지 朴씨는 자신이 다니던 교회 목사와 상의,그해 8월 한상군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LA근교 프레즈노 퍼시픽 칼리지를 소개해 줬습니다.LA시내에서 4시간이나 떨어져 있고 주변에는 식당조차 찾을수 없을 정도로 한적한 곳이에요.착실히 공부만 하라고 그 대학을 소개해 줬는데….』 아버지 朴씨가 다니던 답십리 반석교회 朴구하목사의말이다. 프레즈노대학 어학원에 등록하고 월5백달러짜리 월세아파트에서 아버지 朴씨가 보내주는 月2천달러의 생활비를 받으며 미국생활을 시작한 한상군은「놀러 미국에 온」다른 유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방탕의 길로 접어들었다.
8월23일 한상군은 친구들과 라스베이거스 도박장에 가 포커로하룻밤에 5천달러(한화 4백여만원)를 날렸다.
처음에는 눈앞이 캄캄했지만 통큰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에이그까짓 것』하는 생각이 들었다.도박에 빠진 한상군은 주말이면 아예 라스베이거스로 가 한번 베팅에 2~5달러씩을 거는 블랙잭등에 몰두했고 아버지가 보내주는 돈으로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올1월 귀국한 한상군은 아버지 朴씨에게『승용차를 사겠다』며 1만8천달러(1천4백여만원)를 받아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달려갔으나 미숙한 영어때문에 변변한 게임도 한번 못해보고 하룻밤에 전액을 다 탕진했다.
「갈때까지 간」한상군은 올2월에는 유학생 친구 金모군을 보증인으로 2천달러짜리 일제 혼다승용차를 60개월 할부로 샀지만 돈갚을 길은 애초부터 없었다.
한상군은 4월20일 부모몰래 귀국해 조흥은행에서 카드를 발급받고 이 카드로 사채업자에게 현금 2백여만원을 빌린뒤 국내에서사귄「오렌지족」친구들과 여자를 차에 태우고 다니며 호텔나이트클럽등에서 흥청망청 보냈지만 3일만에 부모에게 발각돼 강제로 미국으로 쫓겨갔다.
『아버지를 죽이면 막대한 재산이 장남인 나에게 다 돌아올텐데….』미국행 비행기에서 한상군은 미국에서 경찰관인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던 영화를 본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도 꾸지람만 하는 부모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
지난 13일 귀국한 한상군은 16일 세운상가등을 돌며 등산용칼,플라스틱 기름통,휘발유등을 사 집안에 숨겨놓았고 같은집에 살던 이모 부부가 석탄일을 맞아 수안보온천으로 관광간 18일 범행에 착수했다.
오후11시쯤 같은방에 있던 조카가 잠이 든사이 한상군은 피가묻지 않도록 옷을 모두 벗고 침대커버로 몸을 감싼뒤 등산용칼과과도를 들고 안방에 들어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온몸을 수십차례씩찔러댔다.
온몸에 묻은 피를 씻어내고 자기방에 돌아온 한상군은 50분쯤지난뒤 다시 안방으로 가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한상군 부모의 시체는 불길에 휩싸였고 방안에서 잠자던 조카도화상을 입은채 간신히 구조됐지만 한상군은 옷을 다 갖춰입고 신발까지 신은채 유유히 집밖으로 빠져나왔다.
부모의 시신을 모신 병원영안실에서도 태연한 표정이었던 한상군은 1주일만에 경찰의 추적으로 결국 범행일체를 자백했다.朴씨는아들 형제를 두었으며 차남(20)은 지방 모대학에 재학중이다.
〈金東鎬.申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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