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논술의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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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면 안 돼. 그러면 수레바퀴 밑에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1877∼1962·사진)의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 대목이다.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가 다니는 신학교의 교장은 학생들에게 수레바퀴로 상징되는 사회질서를 잘 따르라고 설교한다. 어른들이 정해 놓은 굴레에서 벗어나지 말 것을 은근히 강요하는 것이다.

 『데미안』 『유리알 유희』 등 주옥 같은 작품을 남긴 헤세는 이 작품의 주인공처럼 신학교를 중도 퇴학하고 시계 공장과 서점 등에서 견습사원으로 일하며 사회에 적응하려고 애를 쓰다 우울증에 걸려 자살 시도까지 했다. 이런 젊은 날의 방황을 토대로 쓴 것이 『수레바퀴 아래서』다. 1906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입시와 교육제도, 학력 위조로 홍역을 앓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헤세는 이 자전적 소설에서 한스란 인물을 통해 학교의 엄격한 규율과 훈련이 학생들의 영혼을 얼마나 억압하는지 드러낸다. 한스는 누구나 인정하는 똑똑한 아이다. 그가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장차 목사가 되거나 강단에 서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좋은 대학을 나와 그럴듯한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한스가 얼마나 풍부한 감수성을 지녔는지, 얼마나 자연과 교감을 나누고 싶어했는지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학력을 지나치게 중시하면서 학벌주의와 학력 위·변조 등 갖가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대학 졸업생들이 학사모를 던지며 졸업을 자축하는 모습. [중앙포토]

하지만 한스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이웃들은 그에게 더 이상 애정과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한스는 단지 신학교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를 인생의 낙오자로 낙인한 것이다. 철공소 견습생으로 새 삶을 시작한 한스는 동료 공원들과 우정을 나누고 고향 길거리를 다니며 잠시 행복에 젖어들지만 방황 끝에 죽음에 이른다. 한스의 이런 모습은 제도권 교육에서 경쟁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우리나라 청소년의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헤세는 이 작품에서 제도권 교육이 학생의 개성과 재능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색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르주아 사회는 교육을 세속적인 출세와 연결하려고 할 뿐이며 제도권 교육은 사회에 필요한 인간 유형을 만드는 데만 신경을 쓴다고 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학교나 사회가 정해 놓은 일정한 규칙을 따라야만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맹목적인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특히 학력으로 개인의 능력은 물론 인격을 평가하려 드는 풍조 속에서 저명 인사들의 학력 위조 사건이 연일 터져 나오는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모순되고 위험스럽기만 하다.

 소설에서 구둣방 아저씨 플라이크는 한스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나 나, 우리 모두 저 아이에게 소홀했던 점이 적지 않을 거예요.”
 학교 울타리를 벗어난 청소년들을 무조건 불량 청소년으로 간주하는 우리 사회의 어른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학력 위조를 부추기는 우리 사회가 새겨들을 말이다.

 구번일(연세대 비교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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