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밖엔 난 몰라-사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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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14면

어릴 적에 미주(박시연)를 보고 첫눈에 반했던 인호(주진모)는 고등학생이 되어 그녀를 다시 만난다. 인호는 어머니와 오빠를 잃은 그녀를 지켜주고자 하지만, 그녀를 강간하려던 건달 치권(김민준)을 찌르고 살인미수범이 되어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리고 미주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7년이 지나고 인호는 어시장 막일꾼의 나날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유 회장(주현)의 여인이 되어 있는 미주와 재회한다.

블록버스터 ‘태풍’을 만든 곽경택 감독이 다시 작은 영화로 돌아온 ‘사랑’은 너무도 진부하기에 비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사랑의 이야기다. 인호는 초등학교 시절 단 며칠 보았던 미주를 몇 년 만에 보자마자 신 내린 무당처럼 알아보고, 영화 대사에도 나오듯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녀를 위해 자신의 미래를 송두리째 내던진다. 그 대가는 너무도 가혹하여 폭력조직의 린치와 희망 없는 나날과 연인의 실종이 한꺼번에 덮쳐오는데도, 인호는 천진난만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미주를 다시 만날 방법을 궁리할 뿐이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두 사람은 다시 만나 금지된 사랑으로 빠져든다. ‘사랑’은 관객의 예상을 한 치도 빗나가지 않기에 오히려 신기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사랑’이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들을 한데 모은 영화가 된 까닭은 명료하고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들추어도 수백만 가지 의미와 파장을 지닌 단어 ‘사랑’을 맹목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너를 사랑한다”는 말에는 내가 죄를 지어도 너를 지켜주겠다거나, 단 몇 달 동안의 사랑을 인생과 맞바꾸겠다거나, 부모와 동료에 대한 사랑보다도 너를 향한 사랑이 우월하다거나 하는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인호는 ‘사랑’ 그 한마디로 막무가내다. 회의도 갈등도 없다. 그러므로 영화 ‘사랑’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곽경택 감독의 전작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다소 코믹한 남자들의 에피소드와 비장한 구도의 화면, 공을 들인 액션과 서정적인 분위기를 담은 사랑의 장면은 돋보이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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