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따라잡을 인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7호 26면

신동연 기자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인도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독립한 1947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경제 성장률은 3%에 불과해 인구증가를 감안하면 일인당 소득 증가는 거의 없었다. 당시 지도자였던 네루와 인디라 간디는 상황을 방치하고도 만족했다. 인도경제는 60년대 발전경제학의 대세에 따라 국가계획경제로 운영됐다. 회사를 차리려면 까다로운 정부의 인허가 과정을 뚫어야 했다. 인도는 한국과 대만이 미국에 매인 나라라고 간주하고 경시했다.

다행히 사유재산이 인정돼 중국 농민들과 달리 인도의 촌락민들은 굶어죽지 않았다. 게다가 농학자인 인도의 M S 스와미나탄과 미국의 노먼 볼로그가 주도한 녹색혁명으로 농업생산량은 10년마다 두 배로 늘어났다. 91년은 그런 인도에 전환점이 됐다.

두 가지 사건이 인도를 깨어나게 했다. 중국의 도약과 소련의 붕괴였다. 인도와 구상무역을 하던 소련과 달리 러시아는 인도에 달러를 요구했다. 인도는 시장을 개방해 외국 투자자들을 유치하고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정책이 바뀌자 도처에서 자본주의가 꽃을 피우고 소규모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인도 기업인들은 세계 정복에 나섰다. 그들은 상품을 수출하고, 외국 기업들을 사들였고 먼 곳에 있는 시장에도 침투했다. 현대 경영 기법도 배웠다.

경쟁국 중국은 인도를 더욱 자극했다. 인도의 경제 성장률은 중국에 버금간다. 2007년의 경우 인도는 10%, 중국은 11%다. 외국에서 보기엔 중국의 발전이 눈에 더 잘 띈다. 반면 인도는 노후한 인프라에 가려 성취한 것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얼핏 보면 역동적인 중국이 인도를 따돌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표피적인 관찰이다. 중국의 막강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시민사회가 발전할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중국은 주요 도시와 초대형 인프라에 투자를 집중하는 정책을 선택했다. 농촌의 빈곤은 감춰졌다.

인도는 국가가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웅장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경제적·정치적 여력이 없다. 인도의 발전은 주로 나라 전체에 흩어져 있는 작은 기업들이 이룩해냈다. 이는 인도 사회와 민주주의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다.

IT분야에서 거둔 인도의 성공은 유럽·한국·중국과 달리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 산업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인도는 새로운 개발 전략을 발견한 것일까. IT부문이 인도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도의 IT는 인도 경제를 세계 지도 위에 올려놨고 인도인들을 심리적으로 크게 북돋웠다.

하지만 IT 회사들은 실업상태인 수백만의 농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다. 따라서 인도는 중국과 세계 시장에서 전자·섬유·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농민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주해 근로자가 되는 것, 이는 산업화와 경제 발전의 철칙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

물론 민주주의는 인도의 산업화를 더디게 한다. 인도에서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은 지극히 복잡하다. 자연환경·주거환경·부족문화 보존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결정한 바를 신속히 밀어붙이면 된다. 인도에서는 모든 문제에 대해 끊임없는 찬반토론을 해야 한다. 중국의 경우 수력발전소 건설로 아무리 많은 촌락민이 이주해도 항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인도에서는 마을 하나를 옮기려고 해도 사법부·언론·여론·정당 등이 총출동해 옥신각신한다. 그 결과 댐 건설은 원래 계획보다 몇 년 늦게, 규모도 훨씬 축소돼 착수된다. 상황이 이러니 단시일 내에 성과를 보려는 해외투자자들은 인도보다 중국을 선호한다. 중국의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옳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그르다.

느리긴 하지만 인도의 민주주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능케 한다. 1991년 이래 민족주의 우파에서 공산당이 포함된 좌파 연합까지 다양한 정당 세력들이 집권했다. 그러나 시장 개방이나 기업가 정신 등 전략의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우파는 해외자본 유입에 대해 보다 조심스럽고 좌파는 공공부문 변화에 민감하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도 사회의 전체적인 합의는 바뀌지 않는다.

인도와 중국에서 농촌과 도시, 국민의 생활 양식이 바뀌고 있다. 세계 각국은 점점 더 대동소이해지고 있다. 이는 우려할 만한 일일까. 인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인도 고유의 뭔가를 보러 온다. 하지만 인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간디와 네루의 지도하에 독립을 위해 싸운 인도인들은 발전을 위해 싸우는 것이기도 했다. 간디의 꿈에 대해 우리는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 많은 서구인들의 생각과 달리 간디는 진보에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간디는 불의에 반대했으며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경제 발전을 바랐다.

과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간디의 비전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녹색혁명 덕분에 식량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아직도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있다. 시장경제는 빈곤에서 탈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경제보다는 문화가 문제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옥외에서 배변하는 관습은 보건상 큰 위협이 된다. 그래서 정부는 화장실을 짓는 마을을 지원하지만 종종 화장실 청소를 위해 나서는 카스트가 없다.

자유시장경제의 효율성과 분배상의 효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인도인은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 쟁점은 ‘경제발전의 과실을 가난한 여성들도 누릴 수 있게 부를 광범위하게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중국과 달리 인도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토의하고 새로운 해법들을 실험한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