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창>네이키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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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네이키드』는 평소의 열망과 의욕,계획들이 일순간 공허로 돌변할 위험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삶은 외줄타기 광대의 아슬아슬함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93년 이 영화로 칸영화제 최우수감독상을 받은 영국의 중견감독 마이크 레이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런던 뒷골목의 한 어슴푸레한 공간을 골랐다.그는 침침한 아파트에 다섯명의 젊은이를 구겨넣듯이 등장시킨다.
맨체스터출신의 쟈니(데이비드 둘리스)는 런던으로 옛여자친구 루이스(레슬리 샤프)를 찾는다.방문목적이 제시되지 않은채 둘은반가운 기색도 별로 없다.도착하는 날 쟈니는 루이스의 친구 소피와 잠자리를 함께하고 이때부터 목적없이 런던의 밤거리를 헤맨다.다양한 군상들의 인간을 만난 쟈니는 루이스의 집으로 돌아온다. 젊은 집주인의 변태행위 파트너로 전락한 소피.룸메이트 산드라가 아프리카여행으로부터 돌아오자 루이스는 집안에서 벌어지는혼란이 어떤 것이었나 비로소 알게 되고 쟈니에게 맨체스터로 함께 돌아갈 것을 청한다.
대답 않는 쟈니는 다시 집을 나서고,뒤따라 소피도 울면서 집을 떠난다.쟈니의 뒷모습은 무기력.상실감.불감증.우수 등 온갖정신적 피폐함 바로 그것이다.역시 지난해 칸영화제 최우수남우주연상을 받은 데이비드 둘리스는 이 영화를 위해 눈빛까지 바꾸려노력했다고 한다.
『네이키드』는 그 내용만큼이나 성격규정이 어려운 영화다.친절한 스토리텔링 드라마나 코미디.액션에 익숙한 관객에겐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화면의 톤은 어둡고 대사도 앞뒤가 맞지않아 자주 끊어진다.전체를 매끄럽게 끌고 간다기보다 토막난 장면에 오히려 의미를 부여해 놓았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그것은 매스커뮤니케이션의 홍수 속에서 역설적으로 더 메마를 수 있는 현대인의 단절.소외감을 형식적으로 비유한 것으로여겨진다.
〈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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