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물유통구조해부>3.효율 좀먹는 겹겹 먹이사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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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0일 정오무렵 가락동시장 중매인 鄭성훈씨(46.가명)는 영업 마감을 앞두고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바쁘다.
9일 밤을 꼬박 새우며 무 1천만원어치를 중개하고 받은 수수료 수입은 80만원(거래금액의 8%).이중 직원 8명의 인건비가 하루 30만원꼴이고 15만원(거래금액의 1.5%)은 지정도매법인에 수수료로 나간다.산지 수집상들에게 선도금 으로 깔아둔8천만원중에는 월2부짜리 사채도 일부 섞여있어 이자가 하루 5만원은 족히된다.한동안 뜸했던 담당 경매사에게「인사」할 몫도 필요하다.이리저리 떼고나면 순수입은 15만원꼴.공휴일과 영업이시원찮은 날까지 감안하면 그럭저럭 한달에 3백만원정도 버는 셈이다. 수입이 많건 적건,鄭씨가 털어놓는 1일결산을 듣다보면 오늘의 가락동시장에 만연해 있는「먹이사슬」을 엿볼 수 있다.가령 무를 싣고온 농민은 鄭씨에게 정상수수료 6%보다 2%를 더떼이면서도 군소리를 못한다.6%로는 채산이 안맞는다는 중매인들의 주장을 거부하기 어려워서다.무를 트럭에서 내리는 하차비로 4.5t트럭 한대에 5만5천원가량을 도매법인산하 하역노조에 내야한다. 중매인 鄭씨는 지정도매법인에 수수료로 거래금액의 1.
5%를 떼주고 있다.도매법인이 시장관리공사에 내는 도매시장사용료 0.5%의 세배니 도매법인은 앉아서 1%를 챙기는 셈이다.
도매법인이 시장 운영권을 쥐고 있고,중매인들은 허가를 따 는 단계부터 특정 도매법인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등 종속적인 관계여서 어쩔수 없다.
경매사들도 상전이다.이들에게 잘못 보였다간 좋은 물건을 못받거나 형편없는 물건을 뒤집어쓰기 일쑤니 틈틈이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먹이사슬」이야말로 대규모 공영 도매시장들의 효율성을 갉아먹고 있는 주범으로 지적되고 있다.이번의 農安法은 이런 문제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개혁적이었다.그러나 절차와 내용이 석연치않았다.충분한 의견수렴도 없었던데다 법개정의 초 점을 도매시장과 중매인의 영업활동 제한에만 맞췄다는 점에서 절름발이 법개정이었다. 이제 농안법을 전면 재개정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중매인뿐 아니라 시장관리공사.지정도매법인.소매상들까지 모두 손을 봐야하며,차제에 산지에서 소비자에게 이르는 농산물 유통의 전체 과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방향도 잡혀 가고있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에 어떻게 손을 대느냐는 점이다.우선 도매시장의 경우 공정한 경쟁을 위해 현재 지정도매법인에 소속된 경매사들을 시장관리공사나 별도의 공공법인소속으로 독립시켜 경매과정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 로 꼽히고 있다(崔洋夫청와대농림수산수석).
도매시장 관리는 관리공사,운영은 지정도매법인으로 이원화된 구조를 관리공사 또는 공공법인으로 일원화하고,영역다툼이 치열한 지정도매법인과 중매인을 중개.도산매기능을 모두 갖는「도매상」으로 일원화하자는 견해(중앙대 金完培교수)도 연구과 제다.등급분류나 규격화.포장등의 문제로 상장거래품목에서 제외돼있는 무.배추같은 덩치 큰 품목들의 상장여건을 갖춰주는 것도 서둘러야 할과제다(成培永농촌경제연구원유통경제연구실장).
유통 채널을 다원화하는 방안도 강조되고 있다(金正瀧농림수산부제2차관보).산지에 저장시설.직판장을 갖추고 소비지와 막바로 거래하는 산지유통시설,대도시 직판장등 다양한 유통망을 활성화시켜 도매시장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줄이자는 것이 다.서울의 경우 영등포.청량리시장등 유사 도매시장들을 제도권 시장으로 끌어들여 세금을 정상적으로 내면서 영업하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유통과정에서 농간을 부리는 상인들에게 맞설수 있도록 소비자협동조합 결성을 촉진하는 것도 서둘러야할 과제로 꼽히고 있다.남은 6개월동안 정부와 국회가 충분한 의견수렴을 거쳐 제대로된 농안법을 만들어낼지 주목되고 있다.
〈孫炳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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