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여성과학자 싹 자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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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과학을 싫어한다는 속설이 최소한 중1 때까지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부터는 여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도가 남학생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화여대 수학과 이혜숙 교수팀이 최근 넉달간 전국의 중.고등학생 2천7백여명을 조사한 결과다. 이번 조사는 국내 중.고등학생들의 과학 관련 선호도를 조사한 것으로는 최대 규모다.

이교수팀은 학생들에게 "과학 수업이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유발시키는지" 등의 질문을 한 뒤 학생들의 답변을 "전혀 그렇지 않다"(1점)에서부터 "매우 그렇다"(5점)순으로 점수를 매겼다.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의 경우 과학 수업이 재미있다는 답변이 남학생보다 많았지만 중2부터는 역전돼 남학생의 관심도가 계속 높게 나타났다.

이혜숙 교수는 결과에 대해 "중2 이후 여자는 인문학, 남자는 과학을 하기 적합하다는 기존의 성 역할 모델을 교실에서 배워 이를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여학생들이 과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은 바람직한 역할 모델 제시가 부족한 것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 조사에서 여학생의 98.9%가 "아는 국내 여성과학자가 없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남학생은 1백%에 가까운 학생들이 "아는 국내 여성과학자가 없다"고 응답했다.

국내 학교 편제상 중1 때부터 남녀 간에 배우는 과목이 달라지고, 반이 분리되는 것도 이유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중앙대 심리학과 이재호 교수는 "여자가 수학을 못한다는 성 고정관념이 중1 시기부터 여학생들에게 주입돼 1년여 만에 확실히 인식에 자리잡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교수는 "자라나는 여학생들에게 여성도 과학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여학생 친화적인 과학 교습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교수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과학 과목은 생물, 가장 싫어하는 과목은 물리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남학생은 가장 좋아하는 과목으로 지구과학을 꼽았다.

또 남녀 학생 공통으로 90%가 "과학 동아리 활동 경험이 없다"고 응답했다. 교실 밖에서 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는 활동을 학생들이 거의 접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 여학생들이 대학진학 때 희망하는 전공은 인문사회계열.의약학계열.사범계열.예체능계열 순이었다. 자연계열과 공학계열은 각각 9.2%와 6.6%로 다른 계열에 비해 매우 낮았다. 반면 남학생들은 공학계열.인문사회계열.자연계열.의약학 계열 순이었다.

따라서 이공계 기피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학생이 이공계에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책을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상대적으로 높은 남학생의 이공계열 선호도가 실제 대학 진학으로 이어지도록 사회적인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교수팀은 이번 조사결과를 토대로 교육인적자원부의 지원을 받아 여학생들을 위한 과학홍보 책자를 만들어 일선 학교에 새학기부터 배포한다. 책자는 최신 기술 트렌드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 훌륭한 여성 과학자와 이공계 출신 경영자들을 소개하는 내용을 담게 된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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