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씨 진행하는 ‘위자료 청구 소송’ 선정성 치닫는 ‘비키니 골목’ 닮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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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제는 북적이는 비키니 골목이나 페이크 골목에서 좀 빠져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거침없는 입담으로 유명한 김구라씨가 최근 모 신문에 연재한 칼럼 내용이다. 틈만 나면 벗기고 재연을 실제로 포장하는 등 선정성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케이블 TV 프로그램들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맞는 말이다. 다만, 그런 주장을 펼친 필자가 김구라씨라는 점이 좀 의외였달까.

 최근 부부 갈등을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이 부쩍 늘었다. 지난달 방송을 시작한 tvN의 ‘김구라의 위자료 청구 소송’도 그중 하나다. 기획 의도는 ‘이혼한다면 위자료를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고, 위자료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으며, 더 나아가 이혼과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란다.

 그러나 실상 취지는 취지에 그칠 뿐이다. 에피소드 한편에 할당된 23분여 가운데 16분 가량이 사례 재연에 쓰인다. 사례에 따라 농도가 다르긴 하지만 정사신은 빠지지 않는다. 나머지 시간은 출연진들이 성적 농담을 주고 받는 데 할애된다. 위자료를 판정하는 부분은 방송 막바지 1~2분 가량에 불과하다.

 물론 진행자 홀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젊은 여성 패널을 대하는 김구라씨의 태도는 ‘비키니’나 ‘페이크’ 골목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다. 그는 “망사로 된 옷을 한 두개쯤 샀다”는 여성 출연자의 말에 “그래~? 진짜야? 그거 혼수네~. (남자가) 정말 좋아하겠다.”라고 받아친다. “젊고 잘생긴 남자가 몇 백 억쯤 준다고 하면…(돈 받고 잠자리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이란 답변엔 “미쳤어?(몇백 억 주고 너랑 자게)”라며 소리친다. “옷 입는 것만 그렇고(개방적이고) 성격은 보수적”이란 여성 출연자에겐 “짜증나는 스타일이네”라며 인상을 찌푸린다. “독특한 성기구들이 많다”며 설명을 늘어놓고(이 부분은 빨리감기 형식으로 편집됨), “옛날엔 사이다에 미원 타면 애들 맛 간다고…”라는 식의 이야기도 거침없이 풀어낸다.

 ‘에로틱한 방면으로 면역력이 높은 이 김구라조차도 가끔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는 그의 칼럼대로 이 보다 심한 프로그램이 널린 게 현실이지만, 또 하나의 프로그램이 ‘비키니’ 골목에 간판을 올린 것 같아 아쉽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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