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속보이는 특목고 토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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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특목고 제도를 바꾸려는 정부 움직임에 외국어고 교장.교사들이 전면 반발하고 나섰다.

12일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주최한 '특목고 제도 개선 토론회'에 전국 22개 특목고 교장.교사 4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정부가 특목고의 긍정적인 효과는 무시한 채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키고 있다"며 KEDI의 연구 결과를 강하게 비판했다. 일부 교장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KEDI의 연구 결과인 점을 들어 이날 토론회를 정부의 '특목고 제동'을 위한 여론몰이라고 비판했다. 토론회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교원소청심사위원회 강당에서 열렸다.

◆"특목고 교육 효과 없다"=주제발표에 나선 강영혜 KEDI 교육제도 연구실장은 "외국어고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선별집단 의식을 공유한 입시 명문고일 뿐"이라며 "연구결과 수월성 교육(우수 학생 대상 교육)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외국어고와 일반고 학생의 국어 성적을 비교해 학업성취도를 평가한 결과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강 연구실장은 "외국어고는 동일계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을 중심으로 선발하는 '특성화고'로 바꾸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강 연구실장은 또 "외국어고들이 중학교 교육과정을 넘어선 선발시험으로 사교육을 부추기고 있다"며 "과열 입시 경쟁을 완화하려면 특목고 지원 자격에서 내신 성적 기준을 낮추고 자체 선발시험은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로 나온 윤인재 교육부 교육복지정책과장은 "특목고는 과도한 사교육을 조장하는 큰 요인이자 일반고를 이류 학교로 차별화시켜 고교 평준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이 연구 발표를 토대로 10월 말까지 특목고 종합대책안을 마련,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평준화 체제서 외국어고가 교육열 충족"=토론회에 참석한 외국어고 교장들은 KEDI의 연구 결과에 반발했다. 강성화 고양외고 교장은 "특목고에서는 일반고보다 국어 수업 시수가 낮아 동등한 비교를 할 수 없다"며 "객관적이지 않은 자료로 연구를 한 셈이니 결과가 왜곡된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외국어고 교장은 "평준화 체제에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싶어하는 학생.학부모의 교육열을 채워준 게 특목고 아니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평준화가 성공했다면 교육부는 왜 지역별.학교별 학력평가 결과를 공개하지 못하느냐"며 "평준화 제도의 실패를 외국어고에 돌리지 말라"고 말했다. 서울의 또 다른 외국어고 교장은 "토론자들이 외국어고의 문제점을 발전적으로 해결하자는 게 아니라 '외국어고는 무조건 뜯어 고쳐야 할 대상'으로 몰아가 속이 상했다"며 토론장을 나섰다.

서울의 외고 교감은 "교육부가 수능과 내신 위주로 대학 입시정책을 획일화해 놓고서는 특목고더러 그와 무관한 교육을 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교육부 공무원이 직접 와서 외국어고를 운영해 보라고 하라"고 비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날 논평을 내고 "정권 말기에 마치 특목고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며 "정부가 일반고의 교육환경을 높이고 지역 간 교육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특목고를 끌어내려 하향 평준화를 시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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