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 승리 남아공/고대훈특파원이 본 줄루족지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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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총선반대” 줄루족도 평온/“만델라때문에 독립 못했다” 불평/「50명 학살」현장엔 장터 인파 즐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서남쪽으로 6백㎞쯤 떨어진 더반시가 만델라의 당선을 축하하며 환희에 잠겨 전통춤을 추고 있는 동안 줄루족의 고장 콰줄루자치주의 울룬디시를 찾았다.
이 자치주는 총선반대를 요구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아 3월 한달동안만도 2백66명이 정치폭력으로 사망할 정도로 긴장이 극도에 달했던 지역.
이날 낮 찾은 울룬디시는 일단은 그동안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는 모습이었다.
시내라고 해봐야 야트막한 1층 건물들이 전부.
요하네스버그에 「즐비했던」 고층건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어 이름뿐의 자치허용을 통해 백인이 행해왔던 흑백차별의 냄새가 그대로 느껴졌다.
한국기자가 찾아오기는 울룬디 사상 처음인듯 동양인의 피부색깔을 대하는 흑인들은 신기한듯 얼굴을 쳐다보곤 뒤로 줄달음칠 정도여서 순박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내가 아직 평온하다고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울룬디로 진입하는 입구에는 장갑차가 버티고 서있었고 시내에 들어오니 경찰의 모습이 도처에서 눈에 띄었다.
시민 10명에 경찰 1명정도 꼴은 됐다.
시민들의 마음 자체도 아직은 「줄루족자치」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상처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한듯 했다.
콰줄루 지방이라는 이름뿐인 자치주에서 줄루족이 스스로 통치하고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중앙정부에서 완전 독립한 자치국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만델라의 압도적인 승리로 사그라진 때문인지 줄루족들의 만델라에 대한 불평은 쏟아지는듯 했다.
신문·TV를 보며 그들은 『만델라 때문에 독립을 못했다』고 말했다.
줄루자치지역을 근거로 한 인카타당의 전국지지가 6% 수준에 지나지 않았지만 인카타에 대한 지지가 없어진 것도 아니었다.
망고수투 부텔레지 인카타자유당(IFP) 당수와 줄루족의 왕인 굿윌 즈웰리티니에 대한 줄루족의 공경심은 성역에 가까웠다. 한사코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콰나탈주의 한 공무원은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압승을 거두더라도 줄루지역에서의 만델라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흉흉한 소문도 있었다. 『코사족인 만델라가 집권하면 줄루족을 학살한다더라』 『줄루족지역의 다른 종족들은 나탈지역에서 쫓겨난다더라』 등의 소문들이 꼬리를 물고 있는 실정이다.
울룬디에서 만난 한 경찰관은 『그런 일은 없다』면서도 『누가 그런 말을 하는지 가르쳐달라』고 다그치는데서도 긴장의 단면이 느껴졌다.
조 부텔리즈(57·목수)는 『만델라는 지키지도 못할 너무 많은 것을 약속했다』면서 『차라리 백인이 ANC보다는 우리들의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빈정거리듯 말했다.
그러나 이 모든 불만들은 만델라 당선이라는 거센 물결 앞에서 이제는 과거의 기억으로 넘어가는듯 했다.
3일 오후 지난달 28일 5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나탈주 줄루족자치주 콰줄루의 수도인 울룬디의 광장은 언제 그랬느냐듯 수백명의 줄루족들이 평화롭게 장을 보고 있었다.
『대부분의 흑인들은 만델라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카타를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ANC나 백인들의 정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카타 밖에는 모르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인카타를 지지했다는 40대 흑인의 말이었다.<울룬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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