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할 수 있다] 3. 의정보고회 가봤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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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2시40분, 서울 강북지역의 한 대학 교육관. 이 건물 2층 강당에 주부 1백50여명이 모이기 시작했다. 간혹 50,60대 남자들도 눈에 띄었다. 이 강당은 야당 A의원의 '의정보고회'가 열리는 곳이다.

행사장을 찾아가기는 어렵지 않았다. 지하철역 주변에서부터 의정보고회 개최를 알리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고, 행사장 주변에는 ○○○국회의원 의정보고회'라는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기 때문이다. 현역의원이 아닌 정치신인들의 경우 포스터를 부착하고 플래카드를 거는 것은 선거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

오후 3시쯤 행사장이 주민들로 채워지자 사회를 보던 지구당의 조직부장이 바람을 잡기 시작했다. "A의원이 지역에서 한 게 뭐가 있느냐고 하는데 의정보고를 듣고 나면 뭘 했는지 알 것"이라고 큰소리치며 분위기를 띄웠다.

곧이어 A의원이 도착하자 내빈 소개가 시작됐다. 이어 장내의 불이 꺼지고 커튼이 쳐지자 그의 활동상을 담은 비디오가 방영됐다. 뒷동산에 올라 주민들과 어울리고, 자전거를 타고 지역을 돌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이 15분간 방영됐다.

비디오 상영이 끝나자 A의원이 단상에 올라와 자신의 업적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4년간 ○○구 예산 5백60억원을 내가 지원했습니다. Y초등학교 급식시설에 12억원, 재활체육센터 10억원, K초등학교 멀티미디어실 1억5천만원 이게 모두 내가 앞장서서 돈 끌어와서 한 것입니다. 초등학교 다섯개도 내가 유치했습니다. 이 정도면 일 많이 한 것 아닙니까." 주민들은 큰 박수로 동의를 표시했다.

A의원은 "17대 국회에서 꼭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서 "○○천을 정비해 맑은 물이 흐르는 곳으로 하겠으며, 대학도 유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총선 공약을 제시한 셈이다.

A의원이 "새로운 주거환경.교육환경이 조성되면 강남 부럽지 않은 곳이 될 것"이라고 덧붙이자 박수는 물론 "와"하는 탄성까지 나왔다.

열기가 고조되자 마이크를 인계받은 사회자는 한술 더 떴다.

"A의원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바로 대통령 아닌가. 대통령 하려면 이번에 꼭 당선돼야 한다. 그러니 A의원이 정말 일 많이 했다고 홍보해 달라"고 당부했다.

행사는 1시간30분 만에 끝났다. A의원은 입구에서 떠나는 지역주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당직자들은 참석자 모두에게 김밥과 떡이 든 도시락을 나눠줬다. 의정보고회라기보다 지역 민원 해결 보고회를 겸한 자기자랑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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