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음은 쉽게/이미지 맞게/수출지 고려/자동차업계 신차작명 “진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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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좋은 이름이 판매량 좌우/전문기관·학자까지 동원
아벨라·아카디아·엑센트·티코·쏘나타·세피아­.
자동차 회사마다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일 중 하나가 차 이름을 짓는 일이다. 새 차가 나오면 소비자들이 제일 먼저 접하게 되는 것이 자동차 이름이고 그 이름은 차 이미지와 연관돼 판매고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차 업계는 몇년전까지만 해도 새 차 개발이 막바지에 이르면 비로소 이름 짓는 일에 착수했으나 요즘은 개발 초기단계부터 광고회사는 물론 언어학자까지 동원,차 이름을 구상하는게 보통이다.
국내 자동차 이름은 「새나라」부터 시작,「신성호」 「엑셀」 「에스페로」 「쏘나타」 등 국내 고유 모델로 국내에서 지어진 이름과 「제미니」 「크라운」 「피아트」 「봉고」 등과 같이 외국에서 사용된 이름을 그대로 따오는 경우,「아카디아」 「그랜저」 「콩코드」 등 외국에서의 이름 외에 국내에서 이름을 따로 붙인 경우가 있다.
지금까지 선보인 국내 자동차 이름중 순수 우리말인 경우는 「새나라」 「맵시나」 두가지 밖에 없어 자동차 업계가 국어사랑을 외면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소비자에게 주는 이미지,외국에서의 판매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순수 우리말만 고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 73년 6월 현대자동차가 창사 8년만에 만든 승용차를 놓고 이름을 지을 때의 숨은 이야기는 이같은 사실을 잘 말해 준다.
많은 응모자들이 「아리랑」으로 하자고 했으나 『십리도 못가 발명 나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이 금방 나왔고,「도라지」로 정하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곧바로 『심심산골에나 있는 차가 돼버리면…』이라는 연상이 뒤따랐다.
결국 곡절끝에 국제 감각을 고려하기로 하고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포니」(조랑말)였다.
자동차 이름은 사내공모를 통해 결정되는 경우와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지어지는 경우가 있으나 요즘은 후자쪽이 더 많다.
「아카디아」(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산 속의 이상향)가 그 대표적인 예다.
자동차 회사는 ▲회사 및 차의 이미지와 맞고 ▲가능하면 세음절 이내로 발음이 쉬우며 ▲나쁜 이미지가 연상되지 않는 이름 중에서 수출예상지역을 고려해 이름을 정하게 된다.
차이름은 영어가 대부분이었으며 요즘들어 외국말을 짜맞추거나,라틴계통의 말을 사용하는 경향도 있다.
▲「티코」(작지만+탄탄하고 편하다)·「엘란트라」(정열+수송)·「아벨라」(갈망하다+그것) 등은 합성어이며 ▲다마스(친한 친구들)·에스페로(희망하다)는 스페인어다.
또 ▲「르망」(프랑스의 도시이름)은 프랑스어 ▲「라보」(도전하다)·「아카디아」는 그리스어 ▲「프라이드」(긍지)·「그랜저」(응장함)·「브로엄」(중세 유럽귀족들이 타던 마차) 등은 영어다.
최근 현대가 내놓은 소형차 「엑센트」의 경우 3차에 걸쳐 직원 및 해외현지 딜러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끝에 「비바체」 「에버런」 「엑터」 등과 끝까지 경합하다가 신세대·신감각을 추구하는 젊은 층에 어필할 수 있는 차명이라하여 낙점됐다.
한편 새 차이름이 나오면 국내업체들간의 매터도도 만만치 않다.
현대자동차의 「소나타」가 처음 나왔을 때 업계에서 『소(우)나 타는 차」라는 말이 흘러나와 현대측은 「쏘나타」로 이름을 바꿨고,기아가 내놓은 「아벨라」의 경우 『아벨라를 타면 애 밸라』란 말이 번졌으며,대우의 「르망」에는 『르망을 타면 노망한다더라』는 흑색선전이 나오기도 했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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