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여야 논쟁/장관 전원 해임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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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대로 처리하면 40여시간이나 걸린다/“헌법 위배” “양해됐다” 입씨름 가열/22칸짜리 연기명투표 편법 모색/이 의장 “국회전체가 웃음거리될까 걱정”
민주당이 제출한 전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은 여야간 법리논쟁으로 번져 전쟁의 또다른 불씨가 되고 있다. 특히 안건 자체가 국무위원 22명에 대해 개별적으로 제출된 것이라 정상처리할 경우 무려 40여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22칸짜리 투표용지에 연기명으로 투표하는 편법이 모색되는 등 처리에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청와대와 민자당은 각료 전원에 대한 해임건의안 제출은 대통령중심제의 헌법정신 위배라고 강력히 성토하고 나섰으며 민주당은 합법적인 제안이라고 맞서고 있어 이 문제는 정치공방에 이어 법리논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한동 민자당 총무는 『현 헌법을 만들때 5공 헌법에 있었던 국회의 내각불신임안 제출권과 대통령의 국회해산권을 동시에 삭제한 것은 대통령제의 원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민자당의 입장은 민주당이 각료 22명에 대한 해임건의안 제출은 사실상의 내각불신임안 제출이라는 얘기다. 『정치를 희화화하는 구습』(문정수 사무총장·강재섭 총재비서실장),『민주질서를 위협하는 반민주적 처사』(하순봉대변인)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태식 민주당 총무는 『각료해임건의안 제출은 25일 밤 총무회담의 양해사항』이라며 철회나 유야무야로 넘어가 자동폐기시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자세다.
민자당의 입장으로서는 각료해임건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할 경우 이회창 전 국무총리 해임을 둘러싼 논쟁의 장을 야당에 헌납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 민주당으로서도 당내 강경파의 무마를 위해 밀고나가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이런 여야의 복잡한 당내 사정이 맞물려 각료해임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논쟁은 더욱 가열되는 양상이다.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처리를 앞둔 이만섭 국회의장은 27일 아침 「법정신」과 「법절차」 사이에 끼인 자신의 고민을 토로했다.
이 의장은 『헌법에 국회의 내각불신임권이 없는 상황에서 그와 똑같은 효과가 있는 전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제출은 대통령제하의 헌법정신에도 어긋난다』고 못박았다.
이 의장은 나아가 『이번 야당의 요구는 당내 무마용 성격도 없지 않다』며 『마치 시사만화와 같이 국회전체가 희화화의 대상이 될 우려가 있어 정치도의적으로 이번 야당의 요구는 무리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의장은 야당이 꿰어나온 법절차에는 하자가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개별건의안식의 발의에서부터 본회의 보고,24∼72시간내 처리 등 야당이 법조항을 하자없이 이용해 처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야당이 앞으로 이같은 정치도의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야당 총무에게 단단히 일러놓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법정신 위배여부를 분명히 해놓기 위해 서울대 권영성교수 등 20명의 법학자에게 「해석」을 의뢰해놓았다고 한다. 현재 찬·반 양론이 다소 엇갈리는 것으로 나타나 이같은 법정신 위배여부 해석을 정리해 본회의 투표전 의장발언이나 대의원 공한을 통해 이 부분은 분명히 해놓을 것을 검토중이다. 민자당이 「본회의 퇴장」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이 의장은 『엉터리같은 소리』 『국회운영을 파국으로 몰아가기 위해 누가 흘린 얘기 아니냐』 『이 총무도 전혀 그런 생각을 안하고 있다』며 펄쩍 뛰고 있다. 무엇보다 『반쪽국회·파행국회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연임여부와는 관계없이 5월말로 다가온 자신의 임기말에 국회를 모양좋게 끝내고 싶다고 이 의장은 거듭 강조했다.
○…규정대로 처리할 경우 국무위원 한사람의 해임건의안마다 30분이내의 제안설명에다 별도의 표결절차를 실시해야 하기 때문에 줄잡아 40여시간이 소요된다.
뒤늦게 이같은 문제점을 발견하고 고심하던 민주당 김 총무는 26일 오전 박상천의원과 국회사무처 의사과장 등을 불러 연구한 끝에 연기명 투표라는 편법을 찾아내 총무회담에 제시한 것.
이 방법이 채택될 경우 우리 국회 사상 처음으로 22칸짜리 투표용지가 등장하게 된다.<김두우·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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