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추억' 세대전쟁·반미 퇴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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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은 12월 19일 치러질 대선을 꼭 100일 앞둔 날이다. 2007년 D-100일은 2002년 대선과 비교하면 ‘세대 간 전쟁’이 주춤하고 남북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는 등 큰 차이가 있다. 9일 서울에선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여의도 당사에서 웃으며 기자회견을 했다(左). 이날 제주 시민회관에서 대통합민주신당 합동연설회가 열리기 전 유시민·한명숙·손학규·정동영·이해찬 후보(왼쪽부터)가 박수를 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연합뉴스]

'붉은 악마'와 '촛불 집회'로 상징되던 2002년 대선의 추억은 이제 유통기한이 끝난 것일까. 10일로 2007년 대선이 D-100일을 맞지만 범여권 후보는 아직 윤곽조차 잡히지 않은 사상 초유의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5년 새 한국 사회의 정치.선거.세대.이념.문화 지형이 급변했다는 의미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9일 "무엇보다 2002년 '노무현 돌풍'을 일으킨 주역이었던 20, 30대 진보 취향의 동력이 현저히 약화되면서 세대 간 이념 격차가 많이 줄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세대 간 전쟁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20, 30대에서 여당의 노무현 후보에게 크게 밀렸지만 지금의 이명박 후보는 전 연령층에서 범여권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만성적인 청년실업 여파로 20대의 탈이념화.실용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이들 '영 제너레이션'이 40대보다 이념적으로 오히려 보수화됐다는 연구조사 결과도 있다.

2002년엔 월드컵 4강 신화로 고조된 '민족주의 열기'가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을 통해 촛불시위로 터져 나왔고 이는 "반미면 어떠냐"며 기염을 토했던 노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었다. 주한 미8군 사령관이 불타는 성조기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CNN에 보도돼 미국 조야에 충격을 줬던 게 그 즈음이다. 하지만 2007년은 그런 노 대통령이 진보 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한.미 간 새로운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5년간 인터넷 권력의 이동도 핵심적인 변화 가운데 하나다.

2002년엔 진보 진영이 선거의 새로운 무기였던 인터넷을 독점하면서 오프라인에만 매달렸던 이회창 후보를 농락했지만 요즘은 보수 진영의 인터넷 활용이 그에 못지않다.

2007년 대선의 신병기인 사용자 제작 콘텐트(UCC) 부문에선 보수 진영의 영향력이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역구도도 누그러질 조짐이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호남에서 93.2%를 얻어 4.9%에 머문 이회창 후보에게 압승을 거뒀지만 지금 이명박 후보는 호남에서 20%가 넘는 지지율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선거 전문가들은 이런 조건들이 이명박 후보가 50%대의 기록적인 고공행진을 이어오는 밑거름이 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선 결과를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대선 구도가 아직 짜이지 않아 워낙 유동적이고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범여권이 ▶후보 단일화를 한 뒤 ▶이명박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를 효과적으로 펼치고 ▶영호남이나 호남.충청 연합정권 카드로 한나라당의 영남권을 공략할 수 있는 정치연대를 형성한다면 대선 승부는 51 대 49의 박빙 구도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범여권에선 10월 초 남북 정상회담에서 선거의 어젠다를 '경제'에서 '평화'로 바꿀 만한 중대한 결과물이 나올 경우 대선 판도가 요동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정하.남궁욱 기자<wormhole@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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