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상점마다 “매물”/남아공 총선현장을 가다/고대훈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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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3백42년만의 「백인통치」 종식/백인들 한달새 천가구나 해외로
3백42년간의 소수 백인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한 역사적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총선거가 막을 올렸다. 중앙일보는 26일부터 28일까지 3일간 실시되는 남아공 사상 최초의 전인종 참여 총선을 취재하기 위해 고대훈 파리특파원을 현지에 급파했다.<편집자주>
『꽝』하는 폭음이 공기를 갈랐다. 충격이 채 사라지기전에 장갑차 캐터필러소리와 사이렌 소리가 도시 전체를 뒤흔들듯 요란하게 퍼져갔다.
호텔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서자 모퉁이를 도는 장갑차의 모습이 보였다.
본능적으로 사고현장으로 달려가려고 차를 수배했다. 호텔측에서 『가봐야 소용없다』며 말린다. 금방 도착한 기자에게 어깨를 으쓱해보인다.<관계기사 6면>
나중에 들었지만 이 사고는 이날 오전 10시 요하네스버그 중심가 아프리카 민족회의 지구당 사무실 건너편에서 강력한 폭발물을 적재한 차량 1대가 폭발한 사고였다.
이 사고로 적어도 7명이 숨졌다는 뉴스가 이날내내 방송을 타고 나왔다.
3백42년 백인 소수통치를 종식시키는 남아공의 사상 첫 전인종 총선거는 여전히 고통과 피가 튀는 현장이었다.
거리를 어지럽게 장식한 선거 포스터가 선거열기를 전해주고 있었지만 섭씨 10도 정도의 초가을 날씨속에서 태평스레 햇빛을 즐기는 백인들의 모습은 서유럽의 평온한 전원도시와 구벌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이같은 인상은 잠시. 삭막한 시내엔 불안한 정적이 깔린 가운데 고층건물이 밀집한 중심가는 수도의 진입로완 딴판이었다.
「흑인들의 대낮 떼강도를 조심하라」는 주의를 듣고 찾아간 시내는 스산하기가 유령도시를 연상케 했다. 음식점 등 상가는 철시한 가운데 「세놓음」 「매물」 등의 안내문이 건물마다 붙어 있었다. 길거리는 오가는 사람은 허름한 옷차림의 흑인들 뿐이었고 거리의 뒷길은 상업도시 요하네스버그란 이름과는 동떨어진 슬럼가였다.
몇년전부터 흑인들이 밀려들면서 뉴욕보다 앞선 세계 최대의 범죄지대로 전락했고 백인들은 근교로 사무실을 이전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도시를 흐르는 갈등은 사람들 사이에서 직접 느껴졌다.
『저는 우리 국민을 위해 싸우는 아프리카너입니다. 우리는 팔레스타인이나 이스라엘처럼 우리만의 자치국가를 원합니다.』
크리스 반 델르 히버씨(48·상업)는 『우리가 태어난 땅에서 소수 백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을 만들었을뿐』이라며 화합을 거부하는 자세를 보였다.
아프리카너를 자칭하는 네덜란드와 프랑스계 후손들은 총선결과에 따라 자신들의 언어·문화가 흑인속에서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흑인 코브 마체크씨(37·의사)는 『백인이 갖고 있는 부의 재분배 없이는 총선후에도 아무 것도 기약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요즘엔 한달에 1천여 백인가구가 이곳을 등지는 엑서더스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화합되지 않는 색 「흑」과 「백」이 하나로 화합해 어떤 무늬를 펼쳐낼지 궁금했다.<요하네스버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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