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를 잇는 순환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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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양화가 백수남(1943∼98)은 국내에서는 다소 낯설다.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했지만, 주로 프랑스 파리에서 작가로 활동했다.

 서울대 회화과 졸업 후 80년 파리로 유학간 그는 사물을 사진처럼 그려내는 극사실주의적 화풍을 고수했다. 화법은 사실적이되 소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법한 설화나 환상의 장면들이다. 한국에 많지 않은 초현실주의 화가다.

 30여년간 작가는 상상의 것, 근원의 주제를 꾸준히 탐구했다. 70년대에는 빨갛고 파란 구슬로 이중나선 모양을 그리고 ‘핵산(DNA)’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당시로서는 전위적이었다. 그때 작가는 창작노트에 “인간 최대의 욕망은 생명의 영원화에 있고, 내 작품의 주제는 생과 사의 영원을 잇는 순환의 세계다”라고 적었다.

 한국을 떠난 80년대 이후에는 우리 상고사를 테마로 ‘신시 아사달’ 시리즈를 그렸다. 신시(神市)는 상고시대 환웅이 백두산 신단수 아래 세웠다는 도시로 고조선의 건국지다. 아사달(阿斯達)은 환웅의 아들 단군이 도읍으로 삼은 곳(『삼국유사』기록). 백수남은 90년대 초 귀국해 세종대 회화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55세에 심장마비로 작고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는 30일까지 그의 작품 60여 점을 선보이는 유작전을 연다. 02-720-1020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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