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종전선언 설명 좀 … " 부시 "우리는 친한 친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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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이 여덟 번째 만났다.

보통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해 양자 정상회담을 하면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시간을 쪼개 여러 나라와 정상회담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올해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만 해도 21명이다.

노 대통령의 경우 7일 하루 동안 한.중(30분), 한.호주(15분), 한.베트남(30분) 정상회담을 잇따라 했지만 15~30분 정도였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과의 만남은 언론 회견을 포함해 1시간10분이나 됐다. 그만큼 긴밀하게 협의할 사안이 많았다는 얘기다.

그중에서도 "두 정상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 깊이 있게 협의한 부분은 북핵 문제"(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였다. 노 대통령이 10월 초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핵을 폐기하면 한국전쟁 종결을 선언할 수 있다"는 자신의 말을 전해 달라며 노 대통령을 "친구"로 호칭했다고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공개했다. 부시 대통령이 "'우리 둘이 친한 친구 사이니까 내 뜻을 (김 위원장에게) 잘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는 것.

노 대통령 못지않게 임기 말로 접어든 부시 대통령도 북핵 문제 해결이 그만큼 절실한 셈이다.

부시 대통령은 기자들 앞에서 노 대통령을 "미스터 프레지던트"로 부른 뒤 "생큐 서(Thank you, Sir)"라고 예우했으며, 노 대통령도 "대통령 각하"라고 예우했다.

회담 결과를 기자들에게 설명하던 중 노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이나 한국 국민들이 듣고 싶어한다"며 부시 대통령에게 한국전쟁 종결 발언을 다시 해 달라고 두 차례나 요청했다. 부시 대통령은 "더 이상 어떻게 분명히 말씀드릴지 모르겠다"면서도 노 대통령의 요청을 들어줬다.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부시 대통령의 명시적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물밑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한.미 정상회담 전 워싱턴 외교가 일각에서 6자회담이 남북 정상회담에 종속되는 모양새로 가선 안 된다고 경계하는 분위기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남북 관계와 6자회담은 상호 보완적으로 추진되며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을 위해서도 북한의 비핵화가 필요하다"고 부시 대통령을 안심시킨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그 결과 부시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지지하며 지금까지와 같이 한국 정부의 노력이 6자회담 진전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날 정상회담은 부시 대통령이 묵고 있는 시드니 인터콘티넨털 호텔로 노 대통령이 찾아가는 형식이었다.

임기를 6개월 남긴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 또 한번의 정상회담을 할 수 있을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번 시드니 정상회담이 마지막이 아니다"라며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한 차례 더 한.미 정상이 만날 수 있다는 뉘앙스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논의가 속도를 낼 경우 4개국 정상회담에서 얼굴을 맞댈 가능성도 있다.

시드니=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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