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혁시시각각

예수님과 부처님은 뭐라고 하실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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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시다시피 난초를 잘 돌보려면 꽤나 정성이 필요하다. 어느 날 밖에 나갔던 스님은 문득 난초 생각이 났다. 열린 창문으로 햇볕이 직접 내리쬐는 건 아닌지, 비라도 들이치는 건 아닌지. 조바심이 났다. 맘속에는 온통 난초뿐이었다. 순간 스님은 깨달았다. 사람을 얽매는 건 물질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님은 말했다. “버려요. 당신이 뭘 소유하는 게 아니라 그냥 거기 얽매여 있는 거라오.”

나는 지금 속세에서 법정 스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삶을 산다. 그래도 자식에 대한 기대, 일에 대한 욕심으로 힘들어질 때면 문득문득 떠오른다. “버려요. 버리라고.”

‘밥 퍼’ 최일도 목사님을 알게 된 건 사건기자 팀장을 할 때다. 후배가 보고해 왔다. “청량리 588 사창가에서 목사 한 명이 주변 부랑배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밥을 퍼주고 있다”는 거였다. “목사가 밥을 퍼줘? 몇 번 하다 관두는 거 아냐” 하고 농담처럼 말했다. 어쨌든 기사는 내보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훨씬 지났다. 최 목사가 퍼준 밥 그릇이 수백만 개를 넘었다는 얘길 듣고 있다. ‘밥이 하늘’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는 수백만 개의 하늘을 만든 사람이다.

무소유의 법정. 남에게 밥을 퍼주며 사는 최일도. 종교적 신념이 없었다면 그분들이 그렇게 사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탈속(脫俗)과 성(聖), 숭고함에 대한 경외심. 나처럼 종교가 없는 사람도 절에 가면 합장하고 교회에 가면 기도하게 되는 건 종교의 그런 본질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불교와 기독교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도무지 외경(畏敬)과는 거리가 멀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보다 못하다”는 비난이 터져 나올 정도다.

신정아씨의 가짜 학위 문제를 제기해 동국대 이사에서 해임됐던 장윤 스님. 조계종 종단에서 무척 높은 지위인 그 큰스님의 요즘 행적은 한마디로 007 같다. 뭣 때문에 숨어 다니고, 왜 본인 대신 대변인이나 변호사를 내세우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궁금해진다. 도대체 그동안 불자들에겐 뭐라고 설법해 오셨는지. 큰스님이 이 정도면 앞으론 누굴 믿어야 하는지.

실망스러운 정도로 따지면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는 “이슬람 국가에 더 많은 선교단을 보내고 싶다”고 밝혔다. “300명 아니 3000명의 배형규(인질로 잡혔다 살해된 목사)가 나와야 한다”는 설교도 했다고 한다. 이걸 종교적 신념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일반 국민 입장에선 “참 염치도 없구나”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앞으로 인질들이 “우리가 풀려난 건 하느님 섭리”라면서 신앙 간증을 하고 다니고 그게 다시 교세 확장에 이용될지도 모르겠다는 씁쓸한 생각도 든다.

좀 엉뚱하지만 예수님과 부처님이 어떻게 보실지를 한번 생각해 보자.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 기독교와 불교계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 종교에 대한 회의감이 크게 늘어났다. 교회로 가던 발걸음을 돌리고, 절로 향하던 마음을 접게 만들었다. 선교나 포교와는 정반대의 일을 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칭찬 듣긴 어려울 것 같다.

“한국 교회는 부흥회 때마다, 수만 명씩 모이는 대중 집회 때마다 대성통곡하는 회개 기도를 해왔다. 그럼에도 한국 교회와 사회가 점점 더 타락하고 부패하는 까닭이 뭐냐”

내 얘기가 아니다. 원로인 김형태 연동교회 목사님의 한탄이다. 불교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 기독교와 불교계는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예수님과 부처님이 보시기에 지금의 모습이 흔쾌할 것 같은지.

김종혁 사회부문 부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