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 소피아 로렌에 ‘날개’ 달아준 발렌티노, 패션계 역사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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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발렌티노 클레멘테 루도비코 가라바니(75·사진)가 은퇴를 선언했다.

 뉴욕타임스·AP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4일 “그의 은퇴 시기는 10월 파리에서 열리는 프레타 포르테(기성복) 패션쇼와 내년 1월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패션쇼가 끝난 뒤가 될 것 같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발렌티노는 여성성을 극대화한 디자인으로 찬사를 받아왔다. 오드리 헵번·재클린 케네디·소피아 로렌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와 유명인사들이 그의 의상을 입었다. 그의 옷은 꽃을 모티브로 삼거나 강렬한 붉은 색을 과감하게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발렌티노는 명사들과의 교류로도 유명하다. 특히 재클린 케네디와 각별한 우정을 쌓아왔다. 1964년 재클린은 한 파티에서 눈에 띄는 의상을 보고 “누구 옷이냐”고 물은 뒤 디자이너를 수소문했다. 디자이너의 이름을 알아낸 그는 패션쇼를 위해 뉴욕에 온 발렌티노에게 여섯 벌의 옷을 한꺼번에 주문했고, 이후 오랫동안 그의 열성팬이 됐다. 둘의 우정은 각별해 재클린은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발렌티노의 옷을 입었고,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할 때도 발렌티노의 웨딩 드레스를 입었을 정도였다.

 발렌티노는 67년 패션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니만 마커스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7월엔 프랑스의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기도 했다. 이탈리아가 고향인 디자이너가 패션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패션에 대한 평생의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지난해 개봉돼 인기를 끌었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발렌티노의 은퇴는 사실 예견됐었다. 그는 올 7월 로마에서 열린 자신의 데뷔 45주년 기념 파티에서 “(지금 이 순간이) 끝없는 마술과 같고 굉장히 즐거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의 패션전문기자 수지 멘키스는 “그는 지금이 패션계에 작별인사를 고할 완벽한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발렌티노는 데뷔 45주년 기념행사에서 “나의 미래는 새로운 도전과 흥미로 가득할 것”이라며 “예술로서의 패션 역사를 정리하고 미래의 디자이너 양성기관을 세우고 이끄는 것이 오랜 꿈”이라고 말했다. 은퇴 이후의 계획을 밝힌 셈이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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