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20> 불완전한 내 안이 ‘땅끝’ 아닐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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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는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장8절).’ 개신교에서 ‘나의 증인이 된다’는 말은 ‘복음을 전한다’는 뜻으로 풀이되죠. 이 말은 해외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가슴에 새기는 구절입니다. 그래서 이슬람권이든, 아프리카 오지든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갑니다. 최근에 만난 한 목사님은 “선교사들에게 이 구절은 선교에 관한 절대적인 지침”이라고 설명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궁금합니다. ‘땅끝’의 의미가 과연 뭘까. 사도행전을 쓸 때는 어땠을까. 당시에는 땅이 어떻게 생겼다고 봤을까. 네모였을까, 아니면 동그라미였을까.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봤던 ‘땅끝’은 과연 어느 나라, 어느 지방쯤이었을까.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완전하게 만드셨죠. 무엇 하나 보탤 것도, 무엇 하나 뺄 것도 없이 온전하게 만드셨죠. 들판의 나무, 길가의 돌, 그 위를 지나는 바람까지 ‘완전한 존재’였겠죠. 인간도 마찬가지죠. 아담과 이브도 그렇게 완전한 존재였겠죠.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달라졌죠. 아담과 이브만 ‘불완전한 존재’가 되고 만 거죠. 죄를 아니까요. 이후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은 계속 ‘불완전한 존재’로 머물고 있죠. 나무도, 돌도, 바람도 하나님이 만드신 그대로인데 ‘인간’만 달라진 거죠.

 주 기도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늘은 어떤 곳일까요. 완전한 곳이겠죠. 그럼 땅은요. 불완전한 곳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뜻을 땅에서도 이루어달라고 인간이 그토록 절절하게 기도를 하는 거겠죠.

 그럼 ‘땅’은 어디일까요. 우리가 딛고 선 이 지구의 지층만 ‘땅’일까요. 육지와 바다로 된 이 세상만 ‘땅’일까요. ‘땅’은 불완전한 공간, 불완전한 존재죠. 그래서 저는 ‘인간’이 바로 ‘땅’이 아닐까 싶네요. 아담과 이브의 후신인 ‘나의 몸’과 ‘나의 마음’이 바로 ‘땅’이 아닐까 싶네요.

 그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기죠. 인간의 몸은 약 80조 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다고 합니다. 그 세포 하나하나에 ‘선악과의 흔적’이 남아 있죠. 나도 모르는 잠재의식의 그 밑바닥에 욕망과 집착의 뿌리가 남아 있죠. 그럼 ‘땅끝’은 어디가 될까요. ‘나’에게서 가장 멀리, ‘나’속에서 가장 깊이 숨어 있는 ‘마지막 불완전함’이 바로 땅끝이겠죠. 그게 ‘나’라는 ‘땅’의 끝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다시 짚어봐야죠. 지구의 땅 끝뿐 아니라 태양계 너머, 아니 은하계 너머 이교도의 땅을 찾아가는 목숨 거는 선교를 한다 해도 ‘내 안의 땅끝’에 닿지 못한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고 하셨죠. ‘내 안의 땅끝’에 복음이 흐르지 못한다면 결코 예수님 안에 거할 수도 없겠죠.

 마태복음에는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복음 16장19절).’ 산상설교에는 이런 구절도 있죠.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태복음 5장5절).’ 예수님을 만나는 곳, 그건 ‘지구상의 땅끝’이 아니라 ‘내 안의 땅끝’이 아닐까요.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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