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변호사 1호 황주명 충정 대표변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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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명(67·사진) 충정대표변호사는 국내 최초의 사내(인하우스) 변호사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던 황 변호사는 1977년 출세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법복을 벗어던지고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시 13회 동기 중 선두를 달리던 그가 사표를 던지자 당시 선후배 판사들은 충격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황 변호사는 처음에 대한석유공사 상임법률고문으로 들어갔다. 이듬해 대우그룹 법제실장으로 스카우트됐다. 경기고 2년 선배인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그를 끌어당겼다.

 이후 그는 대우가 진출한 전 세계 각지의 현장을 누볐다. 기업의 이익과 직결된 외국 현지에서의 소송, 계약관계를 꼼꼼히 챙겨 신뢰를 받았다. 한때 대우 임직원들 사이에서 황 변호사는 ‘김 회장의 오른팔’로 통했다고 한다. 다음은 황 변호사와 일문일답.

-부장판사 승진 1순위를 마다하고 기업 법제실로 간 이유는.

 “유신 체제하에서 재판을 하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고심하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보자는 생각에 기업을 택했다. 거기서 많은 것을 배웠다. 서울지역 법원장을 하고 나서 대법관이 되지 못하신 분이 최근 나를 보더니 ‘당신이 현명했어’라고 하더라.”

 -대우그룹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판사를 그만두고 유공에 가 있는데 김 회장이 대우그룹 전무로 있던 친구를 통해 당장 옮기라고 해서 오게 됐다. 내가 기업에 가 보니 자료 관리가 엉망이었다. 법률가는 정리하는 직업 아닌가. 판사로서 훈련받은 대로 대우의 문제를 파악하고 쟁점을 정리했다. 김 회장이 그걸 보고 ‘다른 임원이 보고하는 건 못 알아듣겠는데 당신이 얘기하면 다 알아듣겠다’며 모든 주요 회의에 참석하게 했다.”

 -대우그룹에서 한 일은.

 “2년 근무하는 동안 1년에 100일 정도는 김 회장을 따라 해외 출장을 갔다. 영어를 구사하고 법률전문가니까 여러 가지를 맡겼다. 법률·보험에 이어 나중에는 인사까지 담당했다. 회장 오른팔로 소문이 나면서 모든 민원이 내게 몰렸다. 회장에게 할 얘기를 제대로 하니까 ‘야당 당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기업의 본질상 오너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직언도 있었다. 80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법무법인 충정을 차렸다.”

 -법제실장 근무 당시 가장 기억나는 일은.

 “대우가 78년 미국에서 석탄을 수입하려다 호되게 당한 일을 해결한 적이 있다. 미국의 한 광산컨설팅 회사가 20년 전에 문닫은 폐광에 석탄가루를 뿌려놓고 수십만 달러에 대우에 파는 계약을 체결하고 약속어음을 받았다. 사기를 당한 걸 알고 미국 현지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관련자들이 지급정지하기 전에 약속어음을 담보로 70만 달러를 쓴 것을 확인해 실형을 받게 했다.”

 -사내 변호사 경험이 법무법인 충정을 국내 10대 로펌으로 키우는 데 도움이 됐나.

 “그때 갖게 된 기업에 대한 좋은 인식과 훌륭한 기업인들과의 교류가 많은 도움이 됐다. 회사 사장이 친구인데 그 친구가 급하다며 맡긴 자료를 밤을 새워 써 줄 수밖에 더 있나. 그러다 보니 기업의 신용을 얻게 돼 이만큼 키운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직접 일한다.”

 -요즘 사내 변호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내 변호사들이 기업의 경찰이 돼서는 안 된다. 회사 내부의 문제가 있을 때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야 한다. 기업인들도 사내 변호사를 여러 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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