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 증가 속도 한풀 꺾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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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 시중은행 여의도지점의 주택담보대출 담당자는 요즘 “놀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고객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그는 ‘적자 인생’을 살고 있다. 은행 입장에선 들어오는 돈(대출 상환)보다 나가는 돈(대출)이 많아야 이익을 낼 수 있는데 요즘엔 그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이 지점에서 나가는 주택담보대출액이 일주일에 10억원가량 됐지만 요즘엔 고객이 일주일에 약 10억원씩 주택담보대출금을 갚고 있다. 지난달 주택담보대출 건수는 고작 세 건, 액수도 소액이어서 대출 총액이 3억원도 되지 않는다. 그는 “정부 규제로 주택 매매가 되지 않는 데다 이자가 비싸다 보니 대출받아서 투자할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시중 금리가 오르고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가계 빚 증가속도가 꺾였다. 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7년 2분기 가계신용 동향’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더한 가계신용 잔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3% 늘어난 596조4407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2005년 12월 말(9.9%) 이후 처음으로 9%대로 떨어졌다.

통계청의 2006년 추계 가구수(1598만8599가구)를 기준으로 하면 가구당 부채 규모는 3730만원이다.

 가계 빚 증가율이 떨어진 것은 은행의 주택 관련 대출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은행의 가계대출은 주택 관련 대출이 5900억원 줄면서 2조1886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8.6%로 1분기의 12.3%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양도성 예금증서(CD) 금리가 계속 오르고 있어 이와 연계된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며 “실수요자마저 이자가 부담스러워 대출받아 주택 사기를 꺼린다”고 말했다. 현재 주요 시중은행의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 최고 금리는 연 7.74%로 곧 8%대에 진입할 전망이다.

  한편 은행의 대출 증가율이 둔화된 대신 비은행 금융회사의 대출은 크게 늘었다. 비은행 금융사의 가계대출은 2분기 5조6565억원 늘어 전 분기(1조2679억원)에 비해 증가 폭이 4배 이상으로 확대됐다.

특히 농·수협 단위조합과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 신용협동기구의 가계대출은 4조3939억원이 급증, 2003년 3분기(4조9000억원) 이후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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