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법률 산책] 社益보다 私益 챙기는 경영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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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호 13면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서 고위 경영진이 회사 자금을 유용하거나 부당한 이득을 챙긴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분식회계를 통해 회사의 부실을 감추고 주주들에게 엄청난 손해를 안긴 엔론 사태가 대표적이다. 세계 5대 회계법인이었던 아서앤더슨이 엔론에 대한 부실감사의 책임을 지고 공중분해되기도 했다.

엔론 사태의 반성으로 신뢰할 수 있고 투명한 회사 지배구조를 강제하기 위한 사베인즈-옥슬리 법이 2002년 시행됐다. 경영진에게서 독립된 사외이사 제도, 감사위원회의 기능 강화, 내부고발자의 보호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이 법은 1930년대 뉴딜 입법 이후 가장 강력한 기업규제 법률로 평가된다. 이 법 때문에 부담이 늘어난 회사들이 미국 증시를 떠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회사 지배구조의 개선이라는 대의명분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이 법의 주된 내용은 우리나라 증권거래법에도 도입됐다.

그러나 강력한 입법에도 불구하고 스캔들은 끊이지 않았다. 수많은 회사의 고위 임원이 분식회계, 과도한 보수, 회사자금 유용 등으로 소송당하거나 기소됐다. 어느 대기업의 사장은 회사 돈 200만 달러로 유럽의 섬에서 1주일 동안 아내의 생일파티를 하기도 했다.

이런 스캔들은 주인(주주)의 이익과 대리인(경영진)의 이익이 서로 충돌한다는 회사제도의 본질에서 비롯된다. 경영진에게는 주주들의 100억원 이익보다 자기의 1억원 이익이 더 소중하다. 특히 대주주가 없고 소액주주들에게 지분이 분산되어 있는 상장기업의 경우 적절한 통제장치가 없다면, 경영진은 회사의 장기적인 이익보다는 자기 보수에 직접 영향을 주는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게 마련이다. 이런 문제를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라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될수록 대리인 문제가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일련의 회사 스캔들에 정점을 찍은 것이 2004년 홀린저 사건이다. 전 세계에 많은 언론사(주로 소규모 지역 신문사)를 보유한 언론재벌 홀린저의 지배주주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블랙은 앞선 다른 스캔들 못지않은 부정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자기가 개인적으로 소유한 회사와 홀린저 간의 불공정한 거래를 통해 이득을 취했는데, 이를테면 옵션 거래를 통해 주가가 오르면 자기 개인회사가 이익을 취하고 주가가 떨어지면 홀린저가 손해를 부담하는 식이었다. 경영진이 회사와 경쟁이 되는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명목으로 거액의 ‘불경쟁 수수료’를 받기도 했다.

이 회사는 사베인즈-옥슬리 법에 따라 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겉보기에는 훌륭한 사외이사진을 갖고 있었다. 전 국무장관, 전 국방차관, 전직 주 소련 대사 등 명망가로 이루어진 사외이사진은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적이긴 했지만, 감시 기능을 열심히 수행하기엔 적절치 않았다. 이들은 이사회에서 국제정세를 논하면서도 막상 세세한 거래 내용은 꼼꼼히 검토하지 않았다고 한다.

피고인들은 결백을 주장했으나 지난 7월 시카고 법원의 배심원들은 블랙과 두 명의 고위 임원에게 유죄평결을 내렸고 8월 중순 법원은 1700만 달러 몰수 판결을 내렸다. 아무리 엄격한 법 제도를 시행해도 경영진의 부정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가장 무서운 것이 인간의 이기심이고, 경영진과 대주주의 윤리의식 없이 법만으로 규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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