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2007대선릴레이칼럼④

후보 윤리공방은 시대적 추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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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너무 억울해할 필요 없다. 왜 나만 그렇게 ‘지독한’ 윤리검증을 거쳐야 하는지 억울해하겠지만, 선거 후보를 둘러싼 치열한 윤리공방은 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의 이력과 재산 수준은 특히 혹독한 윤리공방의 빌미가 된다. 그러나 그의 경쟁자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윤리 문제로 앞으로 고생할 것이다. 선거에서 윤리 문제가 중요한 변수로 떠오른 것은 특정 후보(들) 때문만은 아니고 사회 변화로 인한 시대적 추세라 할 수 있다.

먼저 미국의 경우를 보자. 1994년 중간선거에서 깅그리치는 민주당 아성을 무너뜨리고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치윤리를 무기로 사용했다. 민주당 중진급 의원들의 각종 윤리 문제를 파헤침으로써 새 개혁을 위해선 공화당이 승리해야 한다는 인식을 유권자에게 심고 보수층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는 역으로 민주당 측이 공화당 정치인들의 윤리 스캔들을 물고 늘어져 12년 만에 상하 양원의 다수당이 될 수 있었다. 이라크 전쟁의 논란과 경기침체도 공화당에 악재로 작용했지만, 가장 명확히 양당 지지자들을 가르고 민주당 지지표를 결집시킨 요인은 각종 윤리 스캔들이었다. 지난 몇 번의 미국 대선에서도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여러 소소한 윤리 문제가 많은 후보를 곤경에 빠뜨리곤 했다.

미국 사례가 시사해 주듯이 윤리공방이 거세진 것은 오늘날 정치인들이 과거에 비해 특별히 더 비윤리적이어서라기보다는 미국이나 한국에 공통되게 나타난 사회 변화에 영향 받은 바 크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선거 과정이 좀 더 투명하게 노출·개방됐고, 언론이나 상대 측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윤리 문제의 비중이 커졌다. 또한 민주화와 기존 정당 구도의 균열은 표심을 얻기 위한 경쟁을 가열시켰고, 결과적으로 정파 간에 비리 들추기도 늘게 됐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탈산업·탈냉전·세계화·탈물질주의 등의 전환기적 사회 변화가 정치체제의 불확실성을 증가시켰고, 출마자들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위험 부담이 있는 정책 이슈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선거전략인 윤리 공세에 매달리게 됐다. 더욱이 윤리 문제가 국민의 정치 불신을 심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인식되면서 윤리 공세의 선거전략적 가치가 높아졌다.

이런 상황을 반영해 윤리 문제는 2002년에 이어 2007년 한국 대선에서도 파괴력을 행사하고 있다. 윤리공방이 시대적 추세라면 그것을 상대방의 치사한 선거책략이라고 매도할 수만은 없다. 모든 후보, 특히 선두 주자가 윤리공방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그것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선거에서 윤리공방은 후보자들에겐 괴롭겠지만 정치 발전에는 여러 긍정성을 지닌다. 정치인들이 평소 언행에 각별히 신경 쓰게 함으로써 깨끗하고 공정한 정치를 이룰 수 있고, 기득권의 오랜 향유로 인한 부정부패를 씻는 개혁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아울러 유권자의 정치 불신을 완화함으로써 전반적인 국정 거버넌스를 제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윤리공방은 선거 과정의 한 부분에 머물지 않고 곧 전체를 지배해 버린다는 데 사안의 심각함이 있다. 윤리 시비는 감정싸움과 절대적 선악 대결로 이어지기 쉽고, 그런 만큼 온건·합리와는 거리가 먼 극한적 갈등을 낳는다. 이럴 경우 합리적 평가 대상인 후보들의 구체적 정책 입장이나 거시적 국정철학은 관심 밖으로 사라져 버리기 십상이다. 선거 과정이 흑백논리와 절대주의적 도그마의 난무로 교착에 빠지는 늪이 돼 버릴 수 있다.

결국 관건은 균형이다. 후보들의 윤리 문제를 파헤쳐 윤리공방의 긍정성을 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거기에만 치우쳐선 안 된다. 윤리검증은 후보들의 정책공약, 국정철학, 인품, 능력 등 다른 요인들과 함께 균형을 이뤄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정치·윤리 이원론의 시대에 살지 않지만, 윤리만이 유일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용할 만큼 단순한 시대에 살고 있지도 않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