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팽한 찬반론… 큰 논란 일듯/국교 영어교육 공식화 배경과 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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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국제화시대 필요성에 비해 여건 불비/“학교서 고액과외” 말없게 대책 있어야
서울시 교육청이 서울시내 모든 국민학교에서 영어 특별활동을 의무화하도록 지시한 것은 정규과목에 영어를 포함시키려는 사전조치로 보여 또다시 영어 조기교육 논쟁이 일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영어의 조기 교육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시대적 대세에 따라 실시시기만 남았던데 현실이었다.
어학의 특성상 어릴때부터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며 영어가 이미 국제어가 된 이상 국제경쟁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찍 배울수록 좋다는게 조기교육론자들의 주장이다.
교보문고 등 대형 서점들마다 어린이 대상의 영어교재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고 강남일대에선 학부모들의 요구에 따라 1주일에 한두시간씩 영어를 가르치는 유치원까지 등장한 실정이다.
국교·유치원생들에게 미국인이 직접 영어를 가르치는 어학원들도 성황이며 모방송사에서는 어린이 시간대에 영어로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을 방송할 정도로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뤄지는 영어교육 붐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영어를 못하면 학교수업은 물론 성장해서도 직장생활에 지장을 받을게 뻔한데 부모 입장에서는 이민을 갔다오는 한이 있어도 아이에게 영어를 제대로 가르쳐 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5)을 둔 이모씨(32·여·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말이다.
그러나 반대론 역시 만만찮다. 모국어도 제대로 배우기 전의 어린아이들에게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주입함으로써 가뜩이나 범람하는 외국어 홍수를 더욱 부추길 것이고 무엇보다 외국어 교육이 「가진자와 못가진자」 사이의 교육기회 격차를 더 벌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일부 부유층 학부모들은 국민학교 때부터 4∼5명 단위의 그룹을 만들어 외국인 강사를 초청,생활영어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만일 조기영어 붐이 더 확산되면 이젠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한 영어과외 붐이 불게 뻔하고 빈부간 사회적 분열도 더욱 심해질 겁니다.』
학부모 김모씨(31·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말이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국민학교에서 영어 조기교육을 공식화하는 것이 오히려 과외붐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국민학교에서 공식적으로는 영어를 가르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에 음성적인 영어교습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만일 정규교육을 받은 교사들이 학교안에서 모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면 과열과외는 잠잠해 질 것입니다.』
시교육청은 현행법상 국가교육과정에 영어가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일단 전국민학교에서 영어 특별활동을 실시하도록 의무화했다. 그러나 국민학교 4∼6학년들에게 개정된 교과과정이 적용되는 96년부터는 학교장의 재량으로 1주일에 2시간을 교과목에 채택할 수 있으므로 96년부터는 사실상 영어를 정규교과에 포함시킨다는 계획이다.
현재 정규 영어교사가 확보돼 있지 않기 때문에 교사가 확보될 때까지는 수업이 끝난뒤 희망자들에 한해 수업료를 내고 강사들로부터 수업을 받을 수 있게 한다는 게 교육청의 방침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교육열 등을 고려할때 이같은 조치는 결국 모든 학생이 추가로 수업료를 내고 영어강좌를 듣는 식으로 확산될게 뻔하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따라서 일단 조기교육의 방침이 섰다면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교사양성,올바른 교재개발과 동시에 학교수업을 충실히 해 영어 조기교육이 과열 과외붐으로 번지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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