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뽑았던 비엔날레 감독선정위선 무슨 일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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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 비엔날레 감독 출신이어서" "영어로 미학적 담론을 나눌 실력이 되지 않아서".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으로 신정아씨를 선정했던 광주비엔날레재단(이하 재단)은 신씨를 제외한 8명의 후보 중 일부를 불합리한 기준으로 탈락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한갑수 전 재단이사장이 29일 본지와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밝혀진 사실이다. 유력 후보를 탈락시키는 이 같은 기준은 감독선정소위원회의 1차 투표에서 다득표 4명 후보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신정아씨가 결국 감독으로 선정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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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1위 박만우 후보 "경험 부족이라니"=지난 5월 말 예술감독선정소위원회는 투표를 거쳐 2명의 후보를 공동 1위로 재단에 추천했다. 김승덕(프랑스 디종 컨소시엄 프로젝트 디렉터)씨와 박만우(조선대 겸임교수)씨다. 김씨는 재단 측에 외국인 공동감독을 자신이 선정하겠다고 요구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후보를 고사했다. 그러자 재단은 박씨의 후보 자격을 그냥 무산시키고 감독추천소위에 "다시 후보를 선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감독추천소위는 결국 김승덕씨를 제외한 8명 전원을 다시 후보로 재단 측에 넘겼다.

한갑수 전 재단이사장은 박씨의 탈락 이유에 대해 "광주비엔날레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부산비엔날레 감독 출신이어서 큰 행사를 맡을 만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게 재단 이사들의 판단"이고, "(자신이 선임되려고)로비를 한다는 얘기가 있어 탈락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부산비엔날레만 한 국제기획전도 해본 일이 없는 신씨를 감독으로 선정한 것은 이중 기준이라는 지적이다. 로비 이야기 또한 검증된 바 없다.

박씨는 이와 관련, "재단은 당시 내가 2인 후보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았다"며 "김씨를 탈락시켰으면 나하고 인터뷰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윤진섭 후보는 영어 실력 부족?=윤진섭(호남대 교수) 후보에 대해 한 전 이사장은 "외국어 소통 능력에 문제가 있어 탈락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윤씨는 영어권인 호주 웨스턴 시드니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게다가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전시총감독(2004), 인도트리엔날레 커미셔너(2005), 상파울루 비엔날레 커미셔너(2002) 등 국제전 경력이 화려하다. 윤씨는 이에 대해 "국제 미술행사 포럼에서 사회까지 보았던 나를 영어 실력 부족으로 탈락시킨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한 전 이사장은 "외국인 공동감독과 함께 일해야 하기 때문에 생활영어 수준이 아니라 영어로 미학적 담론을 나눌 수준이 돼야 한다"며 "윤씨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준 역시 신씨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캔자스대 3년 중퇴의 경력밖에 없는 처지라 영어로 미학적 담론을 나눌 능력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술계의 한 관계자는 "몇 해 전 신씨가 국제 행사에서 영어로 질의응답하는 장면을 본 일이 있는데 제대로 답변을 못해 보고 있는 내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전 이사장은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후보가 모두 제외되니 결국 신씨 한 사람만 남았다"며 "7월 4일 감독 선정을 위한 이사회를 소집해 놓은 상태에서 시간도 촉박한 상황이어서 1일 신씨를 한 시간 동안 면담하고 난 뒤 후보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동국대 교수,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예일대 박사인 데다 좋은 전시기획도 많이 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예술감독선정소위의 한 위원은 "선정소위는 처음부터 파행이었다. 후보 선정 권한은 없고 재단 측이 전권을 행사하는 게 현실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한 전 이사장은 "나는 후보선정소위의 1차 투표에서 신씨가 4인 후보에 포함됐다고 말한 일이 없다"며 자신의 27일 발언을 번복했다.

조현욱.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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