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예산 쓰고 보자”/정부 못된 관행 수십년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작년에만 총예산 3% 해당/“다음연도 깎인다” 연말 소나기 지출
정부 각 부처를 포함해 대부분의 국가기관이 필요이상의 예산을 배정받아 이 가운데 쓰고 남은 예산(불용액)의 상당액을 연말에 낭비성 경비로 지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거의 모든 기관이 실제 소요액보다 많은 예산을 타내 연말에 이를 집중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감사결과 밝혀졌다.
일부에서는 남은 예산을 쓰기 위해 연말이면 무더기로 국내·외 출장을 보내는 등의 사례는 일반에도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감사원이 최근 감사에서 밝힌 93년도 불용액은 중앙부처를 포함한 60개 기관만 해도 1조1천90억원선. 이 금액은 이들 기관의 93년 전체예산액 39조5천억원의 3%에 이르는 막대한 돈이다.
부처별로는 상공자원부가 1백13억8천3백만원,교육부 4백4억1천9백만원,국방부 7백53억8천9백만원,수산청 1백22억8천8백만원,외무부 1백31억1천6백만원 등의 불용액을 남겼다.
감사원은 지난해 불용액중 절반정도인 6천억원 가량이 사용처가 없어 남은 돈이며 사업중단이나 집행이 지연돼서 남은 불용액이 3천억원 정도,나머지 3천억원은 집행계획이 변경돼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거나 부처의 절약으로 생긴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감사원 집계에 따르면 이번에 감사한 60개 국가기관 모두가 적게는 몇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의 예산이 남아돌아 연말에 목적외의 용도로 쓴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에서 부처별 불용액 사용내용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감사과정에서 드러난 몇몇부처의 예를 보면 예산남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감사원은 『이번에 적발된 불용액의 전용액수는 35억원 정도』라고 밝혔으나 『불법전용 내용을 중점 감사할 경우 훨씬 많은 액수가 적발될 것』이라고 밝혀 부처의 예산남용과 이의 전용이 상당함을 암시했다.
이번에 적발된 불용액의 전용경우를 보면 보사부는 90년대들어 간디스토마 치료 환자수가 8천명에서 1만4천명 내외인데도 이를 감안하지 않고 지난해에는 무려 5만명분의 예산(1억7천4백만원)을 타내 이중 1억4천3백만원을 복리후생비 등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부산경찰청은 3개 기관은 폴러로이드 컬러필림의 재고가 넘치는데도 지난해 추가 구매한다는 명목으로 3천만원을 타내 필름을 구입했다.
서울체신청 등 10개 기관은 지난해 정부공사 및 물자구매 입찰결과 발생한 낙찰차액 14억6천여만원을 국고에 환수해야 하는데도 경제기획원장관과 사전협의도 없이 다른 공사비로 전용했다.
또 건설부 본부 및 서울·대전·원주국토관리청 등은 일반회계 및 도로사업 특별회계의 도로·광역상수도사업 등 시설 부대비 예산을 집행하면서 예산이 남자 공사와 관련이 없는 관서운영비 명목으로 5억4천9백만원이나 사용했다.
상공자원부 역시 채석장의 착암기 등 채석장비 구입명목으로 지원된 1억2천4백만원중 불용처리된 1억1천여만원을 국고에 환수하지 않고 그중 7천5백여만원을 다른 용도로 전용했다.
감사원은 『모든 부처가 불용액을 국고에 반납할 경우 다음연도 예산편성시 예산삭감의 불이익을 염려해 남은 돈은 「쓰고보자」는 식의 못된 관행이 수십년째 계속되고 있다』며 경제기획원에 이에 대한 대책을 수립토록 통보했다.<신동재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