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유전쟁] 39. 학생 체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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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민족사관고 제1기생은 학교 설립 인가가 늦어지는 바람에 일반 고교처럼 학교 성적과 시험을 통해 뽑았다. 그러나 1997년 입학할 제2기생부터는 여름캠프와 영재 선발 프로그램을 거쳐 선발했다. 이들이 들어오자 학교는 활기를 되찾았다. 지난 1년 동안 웃음을 잃은 채 학교 생활을 하고 있던 2학년 11명은 아우들이 들어오자 그들의 생기에 전염이라도 된 듯 활력을 되찾았다. 2학년생들은 스스로 학교 생활규칙을 만들어 아우들을 이끌었다. 모든 학내 행사도 학생들 스스로 치렀다. 지도력과 책임감을 훈련시키기 위해서였다.

나는 교육 내용을 대폭 개편했다. 첫해 학부모들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만들었던 대학 입시 대비 수업 시간표를 영재교육과 민족교육이라는 창학이념에 충실한 내용으로 바꿨다. 영어 상용(常用)제도를 실시하고 해외 유학반을 신설하는 등 민족사관고 특유의 본격적인 정체성 확립에 힘썼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서울대만 바라보는 우리나라 고교의 기형적이고 소아병적인 굴레에서 과감하게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97년 입학한 학생들부터 국내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진학하기 힘들었던 하버드.MIT 등 외국 명문대 입학 길을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과학고.외국어고 등 다른 특수목적들이 그 길을 뒤따라 왔다. 민족사관고가 우리나라 교육의 수준과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았던 셈이다.

이후 외국 명문대에 진학하는 한국인 고교생은 국내 언론의 단골 뉴스가 됐다. 어느 학교 출신의 누구는 하버드에 가고, 어느 학교 출신의 누구는 옥스퍼드에 들어갔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나는 외국 명문대 입학 사실이 뉴스가 되지 않는 날이 와야만 우리나라 교육이 비로소 세계화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족사관고가 그날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족사관고에선 체벌도 가해졌다. 월요일마다 열리는 아침 조회의 주역도 학생들이다. 이 자리에서 지난 1주일간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 대한 체벌이 가해진다. 영어 상용의 규칙과 공동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규약을 어기거나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은 학생이 체벌 대상이다. 규칙을 어긴 학생은 자신과 목격자가 매긴 점수의 누계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조회 때 단상에서 회초리로 종아리를 맞게 된다. 초기에는 종아리를 맞은 학생들 중 몇몇은 부모까지 나서 항의했다. 그러나 학생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벌을 가하는 모습을 본 학부모들은 결국 '체벌 행사'를 받아들였다.

옛날 서당과 서원에서도 체벌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절에서는 계율을 범한 스님에게서 승려 허가증인 도첩(度牒)을 뺏는 등 가혹한 벌을 내렸다. 민족사관고에서 행한 체벌은 우리 전통교육 현장의 체벌 관행을 민주적인 방식으로 재현한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학생 체벌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으나 민족사관고의 경험에 비춰볼 때 이 같은 논쟁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최명재 파스퇴르유업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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