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 간 전용일씨 52년 만의 思母曲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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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머니…. 이 아들을 용서하세요. "

52년 만에 고향땅을 다시 밟은 탈북 국군포로 전용일(73)씨가 20일 오전 부모님 묘소를 찾아 성묘했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영하의 날씨 속에 경북 영천시 신령면 완전리 야산 선영을 찾은 것이다.

나란히 자리 잡은 부모님 묘소 앞에 무릎을 꿇은 全씨는 지난 반세기의 감회가 눈에 어린 듯 절규하듯 "어머니"를 불렀다. "잘 싸우고 오라시던 어머니.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찾아 이제야 왔습니다. 이 아들을 용서하세요. "

고향을 떠날 때 홍안(紅顔)의 20세 청년이었던 全씨는 일흔이 넘어 백발의 모습으로 부모님 앞에 엎드렸다. 주름진 얼굴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전날 퇴역식을 마치고 일곱시간여를 달려 고향에 도착한 全씨는 노령에 여독 탓인지 이날 오전 2시쯤 잠시 탈수 증세를 보여 인근 병원에서 링거 주사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날이 밝기 무섭게 옷을 챙겨 입고 성묘길에 올랐다. 묘소는 첫 밤을 보낸 동생 수일(65)씨 집에서 4㎞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全씨는 부모님에 이어 1999년 작고한 형 환일씨 묘소에도 절을 올렸다. 全씨는 이어 설움이 복받치는 듯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 유행가 '비 내리는 고모령'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동생 수일씨는 "형님이 전사자로 처리된 후 어머니(1987년 작고)께서 '전사자 연금(年金)'을 타는 날마다 '재도 한 줌 없는데 어떻게 내 아들이 죽었단 말이냐'라며 통곡하셨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움이 컸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성묘를 마친 全씨와 가족들은 고향 마을인 신령면 신덕리 주민들이 마련한 환영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1백여명의 주민이 참석해 全씨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귀향을 축하했다.

이에 앞서 全씨는 이날 아침 조카와 손자들의 절을 받고 동생 내외와 누나, 여동생 등과 함께 아침을 들었다. 全씨는 피곤한 기색이었으나 배가 고팠던지 밥 한 그릇을 쉽게 비웠다.

영천=홍권삼 기자<honggs@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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