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밥과 자주와 용산 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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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뉴욕 센트럴 파크에 외국 군대가 주둔한다면 미국 국민이 수용하겠느냐?" 지난해 10월 방한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용산기지를 보고 던진 반문이라는데, 나는 미국 관리의 말을 이렇게 '감동적으로'들어본 적이 없다. 사회 일각의 걱정대로 거기 독이 들었고, 그래서 우리 장래에 해가 될지라도 나의 감동은 변함이 없다. 적어도 그는 한국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청감대(聽感帶)를 간질이며 화끈하게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말을 바라지 않는 사람도 적잖겠지만.

*** 승리보다 더 중요한 전쟁 방지

영국은 홍콩을 1백55년간 조차(租借)했고, 미국은 파나마 운하에 95년간 치외법권을 행사했다. 그것은 전시대 제국주의의 유산이었다. 미군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래 독일과 일본에 주둔하고 있다. 그것은 패전국에 대한 승자의 점령이다. 미군의 한반도 주둔은 식민지 유산도 아니고 전승국 점령도 아니다. 우방을 도우려 왔다가 그냥 주저앉아 환갑을 맞은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떠난다고 해도 세부득이 쫓겨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강제로 쫓아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도와주어 고맙다는 인사와, 이제 우리 힘으로 지키겠다는 자부(自負)의 교감이 뒤따라야 한다. 거기서 1866년 대동강변의 제너럴 셔먼호 격침을 기억할 이유도 없고, 1950년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한 '애치슨 라인'의 실수를 연상할 필요도 없다.

용산 기지 이전을 놓고 온통 나라가 소란하다. 한반도는 평화가 아닌 휴전 체제이나, 전쟁이 끝난 지 51년이 지났다. 더구나 미군이 한국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평택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정적 대응보다 득실 계산이 앞서야 한다. 이전 반대의 가장 강력한 논거는 안보 불안이다. 반세기 이상 들어온 훈화 말씀이다 보니 새로운 맛은 없지만, 국가 안보란 조금만 삐끗해도 큰일나므로 신선도 여부로 따질 일은 아니다. 전쟁과 평화의 확률이 50대50이라도 아군의 대비는 1백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미사일 한 발이면 핵발전소가 그대로 핵 폭탄이 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안보의 최고 형태는 전쟁을 막는 것이지 우세한 전력으로 적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승리보다 중요한 것이 전쟁 방지라면 군사적 견제 못지않게 정치.외교적 노력이 절실하다. 특검이 밝힌 그 음습한 뒷거래에도 불구하고 '햇볕 정책'의 의미를 되씹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면 악의 축에도, 불량 국가에도, 테러 지원국에도 그 햇볕은 무한정 쬐야 하는가? 북한에 붙인 그런 딱지 규정이 사실인지도 의문이지만, 설사 그것이 사실일지라도-사실일수록-그들을 축출하기 위한 전쟁보다 위험을 동반한 공존이 한반도 평화에 그래도 나은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인계철선(tripwire) 논리가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유사시 미군이 선택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적 공약'이다. 반면에 전선의 미군이 공격당하면 즉각 대응할 것이므로 인계철선이야말로 자동 개입을 보장하는 '안전 장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적의 포탄이 용산에 떨어질 지경이면 거기 사령부가 있든 없든 미군의 개입은 의무적이 돼야 한다. 평택은 북한 방사포의 사정거리 밖에 있어 개입을 망설일 정도라면 그런 방위조약은 휴지쪽에 불과하다. 사령부가 어디 있느냐가 아니라 동맹의 결속 의지가 어떠하냐가 현안의 핵심이다. 따라서 평택으로의 이전을 반미 감정에 대한 미국의 신경질적 대응으로 보거나, 28만평이냐 20만평이냐 부지 분쟁의 산물로 보는 것은 한참 잘못이다. 국군의 3군 본부는 유성으로 옮겼지만 그게 과연 서울을 버린 것인가?

*** 굶더라도 지킬 것은 지켰으면

"자주가 밥 먹여주느냐?" 국회 질의가 이렇게 천박하면 못쓴다. 일선 외교관은 밥과 자주를 가르지 않고 간과 쓸개를 빼놓고 뛰어야 한다. 그들에게 "이봐, 굶더라도 나라에는 지킬 것이 있어"라고 한마디 던졌던들 의원 말씀이 한층 감동적이었을 터다. 기지 이전을 둘러싸고 싸움을 하자면 한국과 미국 정부가 벌여야 정상이다. 그러나 자주와 동맹으로 갈리고, 국가안전보장회의와 외교통상부가 맞서는 등 국내의 갈등이 더 심했다. 평소 럼즈펠드 장관의 소행이 마뜩찮았지만 용산에서의 그의 반문에 낯이 뜨거운 것은 사실이다.

정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