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창> 하몽 하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비가스 루나 감독이 만든『하몽 하몽』은 산업화 와중에 있는 스페인사회의 우스꽝스러운 자화상이다.지금 이 나라는 미국식 소비문화가 창궐하고 돈이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잘못된 인식이 많은 사람들의 사고를 멍들게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
『하몽 하몽』은 스페인인들 특유의 열정적 삶의 방식이 새로운문화와 접촉할 때 어떤 양상을 보여주는지를 재치있게 그려내고 있다.먼지가 휘날리는 스페인의 어느 고속도로 주변.대형트럭들이끊임없이 오가는 길가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술집「연인들」이 있다.매춘을 겸하는 이 술집의 여주인 카르멘은 주정뱅이 남편이가출한 후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이곳을 운영한다.팬티공장에서 일하는 그녀의 딸 실비아는 사장의 아들인 호세와 연인사이다.두 사람은 결혼을 생각하지만 호세의 어머니 콘치타는 창녀의 딸과는절대 안된다며 반대한다.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기로 마음먹은 콘치타는 햄 건조 공장에서 일하는 투우사 지망생 라울을 고용,실비아를 유혹하도록 주문한다.이 과정에서 라울의 젊음에 매혹된 콘치타는 그와 불 륜행각을 벌이고 이들의 관계는 점점 얽히고 설키게 된다.이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는 점잖은 사람들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경박성으로 가득차 있다.영화속엔 제대로 된 인간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러나 스페인적인 쌍스러움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감독의 이 저돌적인 연출은 싸구려 에로물과는 격이 다르게 만들고 있다..절제라고는 없다는듯이 원색적인 감정이 마구 드러나는 이 영화는 마치그동안 스페인인들을 옭아맸던 도덕적 권위주의를 비웃는 듯 하다. 감독은 자칫하면 저질로 전락하기 쉬운 내용을 기존의 권위가몰락하고 그 자리에 미국식 물질문명이 들어선 스페인사회에 대한은유로 이해되도록 배려하고 있다.그다지 매끄럽게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지만 우리에겐 아직 낯선 스페인적인 정서 와 유머감각을맛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신선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喆〉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