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카와 개각 무기연기/연정각파 이견조정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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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도력 흠집… 향후 정국 불투명
【동경=이석구특파원】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일본 총리는 2일 집권후 처음 단행하려던 개각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호소카와 총리는 이날 밤늦게 총리 관저로 연립여당 당수들을 불러 개각과 관련한 마지막 조정을 벌였으나 사회·민사·신당 사키가케 등의 반대로 끝내 개각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호소카와 총리는 지도력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것은 물론 앞으로의 정국운영에도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호소카와 총리는 개각연기 결정에 따른 기자회견을 통해 『정치개혁법안이 성립되면 행정개혁을 포함한 경제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해 개각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밝히고 『그러나 연립여당의 결속을 위해 내각개편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호소카와 총리의 이날 회견에는 참석하는 것이 관례로 돼있는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 관방장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끝내 좌절된 일 개각/연정붕괴 우려 관방장관제거 실패/물건너간 화목… 양극현상 가속될듯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일 총리가 추진하던 개각이 좌절됐다.
국민복지세 도입 백지화에 이은 내각개편 실패로 호소카와 총리의 지도력 저하는 피할 수 없게 됐다.
연정을 주도해오던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신생당 대표간사와 이치카와 유이치(시천웅일) 공명당 서기장의 소위 「이치·이치(일·일)라인」도 타격을 받게 됐다. 연립정권은 신생·공명·일본신당과 사회·신당 사키가케·민사당으로 양극화가 가속될 전망이다.
호소카와 총리의 개각시도는 연정내 권력투쟁의 일환으로 내각의 가장 중요한 자리인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 관방장관의 제거가 목적이다.
청와대 비서실장처럼 총리관저를 관장하며 각의를 주도하는 관방장관은 흔히 안살림을 맡는 아내역으로 비유되는 중요자리다. 이 자리에 앉은 다케무라 장관이 정치개혁법안 처리와 국민복지제도 도입시도 과정에서 공개적으로 총리를 비난하는 등 돌출된 행동을 하자 호소카와 총리는 그의 경질을 결심했다.
물론 호소카와 총리의 이같은 결심배경에는 연정 막후실력자인 오자와와 다케무라간의 불협화음이 있다. 오자와는 궁극적으로 보수 양당제를 실현,책임정치를 구현하는 한편 국제공헌을 위한 자위대 해외파견이 가능토록 헌법개정까지 주장하고 있는 반면 다케무라는 온건한 다당제에 의한 합의화 타협의 정치를 내세우며 자위대 해외파견이나 개헌에도 반대하는 등 두사람은 연정내에서 사사건건 대립해왔다. 호소카와 총리는 이 과정에서 추진력·조정력이 돋보이는 오자와 노선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이는 결국 오랜 정치적 동지인 다케무라 관방장관의 경질 결심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연정과 정계개편이 오자와 구상대로 흘러가는 것을 염려한 사회당·민사당이 다케무라와 오자와 대결에서 다케무라편에 섰다.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사회당 위원장과 오우치 게이고(대내계오) 민사당 위원장은 다케무라의 신당 사키가케와 연계해 총리의 개각을 저지했다.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유·진보적 사민계열을 모아 신당을 만드는 등 앞으로의 정계개편에서도 보조를 맞춰 나가기로 했다.
결국 호소카와 총리는 이들의 협조가 없으면 연정이 붕괴될 상황이므로 국민복지세 파동에서처럼 자신의 구상을 또 취소하는 굴욕을 감수해야 했다. 호소카와 총리가 개각을 일단 백지화하기로 함으로써 총리관저의 합의이혼 시도는 일단 백지화됐으나 이미 애정이 싸늘하게 식어 총리관저의 화목은 불가능한 상태다. 이같은 가정불화는 앞으로 곳곳에서 나타날 것이므로 94년도 예산이 통과된후 갈라설 가능성이 크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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