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채용고급인력 국내박사도 각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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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해말 삼성그룹 인력채용팀이 조용히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에유학중인 석사.박사급을 상대로 스카우트를벌인 일이 있다.
미국 유학생 일변도로 고급 연구인력을 채용해온 그동안의 관행에서 보면 파격적인 일이었다.
『우수한 인력은 여전히 미국쪽에 많은 게 사실이다.그러나 우리 기업의 시스팀과 기술은 일본에서 받아들인 부분이 많다.기술의 偏食을 줄이고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처음 시도해본 것이다.
』 삼성그룹의 스카우트 성공 여부는 아직 판가름나지 않았지만 최근 국내 기업의 시각 변화를 상징하는 대목이다.
한때 미국 박사 출신이라면 무조건 우대하던 기업들이 요즘 달라지고 있다.국제화.개방화와 함께 간판보다「실력」이 국제경쟁력의 기준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이에따라 기업들은 누가 기업에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줄 것인가라는 실제적인 잣대로 사람을평가하기 시작했으며 이런 기준에서 기업들 사이에 국내 박사에 대한 평가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학위의 身土不二랄까.
외국물을 먹지않은 국내 출신들이 해외 박사에 치여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외국 박사는 部長,국내 박사는 課長」이란 도식으로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됐던 시절은 이미 지나간 이야기가 되고 있다. 국내 출신 박사들의 돋보이는 연구성과가 발표되면서 최근엔 웬만한 외국대학 출신보다 오히려 실력있는 국내 출신 박사를더 쳐주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주)럭키의 정밀화학연구소 金容柱박사(39)는 91년 세계에서 처음 제4세대 세파계항생제 합성에 성공,현재 상품화연구를 진행중이다.기존 제품에 비해 독성이 거의 없으면서 모든 감염균에 대해선 강력한 항균력을 발휘하는 이 항생제는 국내 新藥 사상 첫 신물질이자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화학분야의 최대 성과물로 꼽히고 있다.
럭키는 영국 그락소社에 착수금 1백억원과 매년 2백억~4백억원에 이르는 로열티(매출액의 7%)를 받기로 하고 새로운 항생제의 합성기술을 수출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은 순수한 국내 출신인 金박사는 그룹의 연구大賞을 받고 당시 37세의 나이에 파격적으로 이사급인 연구위원에 승진했다.
『신물질 개발엔 첨단지식보다 끈질긴 연구기질이 더 요구된다』는 그는『자유로운 분위기에 익숙한 해외 출신보다 국내 출신 연구원들이 우리 기업의 특유한 문화에 더 빨리 적응한다』고 강점을 지적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월드 베스트제품으로 내놓은 무게 1백99g의 세계 최소형 휴대전화기 SH-700도 순수 국내 출신 연구진이 올린 개가.
연구개발을 주도한 千敬俊연구위원(이사급)은 한양대를 졸업하고경북대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뒤 77년 삼성전자에 입사,줄곧통신분야 연구에만 매달려온 국내파고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연구원들도 모두 순수한 국내 출신이다.
千이사는『현재 국내 통신분야의 연구 초점은 첨단 외국기술의 토착화』라며『산이 많고 중계지구국이 적은 한국형 지형에서는 SH-700이 모토로라제품보다 수신감도가 더 나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이 휴대폰 하나로 로열티 없이 매달 15억원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다.
이같은 변화에 따라 최근 굳이 외국에 나가지않고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은 모두 4천61명.90년 2천9백38명에서 91년 3천3백57명,92년 3천7백94명으로 해마다 4백여명씩 증가하고 있다. ***4백여명씩 증가 반면 해외 박사학위 취득자의 공식 통계는 없지만 교육부는 그 숫자가 80년대 후반부터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교육부 관계자는『미국의 불경기로 장학금 혜택이 줄어들었고 학위를 따고 돌아와도 국내에서자리를 쉽 게 잡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李哲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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