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건강] 미국선 검증된 식품에 ‘건강 효과’ 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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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과학적 근거 있으면 허용=미국 워싱턴 DC 외곽에 위치한 식료품 체인점 ‘케헤’의 견과류 판매대. 흑인 여성 울리 에델(33)은 껍데기를 벗기지 않은 호두 30㎏가량을 손수레에 담았다. 체중이 80㎏은 넘을 듯해 “호두 열량이 너무 높지 않으냐”고 물었다. 그러자 호두 겉포장에 적힌 라벨을 가리키며 “의사가 호두를 먹는 게 심장병 예방에 좋다고 했다”며 밝게 웃었다. 호두 포장엔 “하루 1.5온스(약 43g) 이상 호두를 섭취하면 관상동맥질환 위험을 줄일 수 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확보된 것은 아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김치는 지난해 3월 미국의 건강전문지 ‘헬스’가 선정한 세계 5대 건강식품 중 하나. 그러나 국내에서 “김치가 암 예방에 유익하다”고 표시하면 불법이다. 현행 법상 과대광고로 간주된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EU·일본 등 선진국에선 식품에 특정 건강 효과를 표시하는 것이 합법이다.

 미국에서 특정 식품에 건강강조 표시를 허용한 것은 1990년부터. 그해 제정된 영양 표시와 교육법(NLEA)이 제도 시행의 법적 근거다.

 FDA 산하 식품안전과 응용영양센터(CFSAN) 캐서린 카느베일 박사는 “과학적·객관적 근거가 있는 식품에 한해 인정한다”며 “지금까지 14가지 건강강조 표시와 7가지의 제한적(근거 자료가 부족한 경우) 표시를 허가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FDA의 승인 절차는 과거보다 훨씬 간소화됐다. 이에 따라 건강강조 표시가 된 식품 수가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FDA는 이 제도가 소비자와 식품업계 모두 ‘윈윈’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85년 시리얼에 건강강조 표시를 허용한 이후 3년 만에 미국에서 추가로 200만 가구가 아침식사용 시리얼을 섭취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있다. FDA는 이 조치가 대장암 발생률을 낮추는 데 크게 기여(시리얼에 들어 있는 식이섬유)했을 것으로 평가한다(FDA 케스린 엘우드 박사).

 2004년 허용된 호두는 소비량이 전년보다 17% 늘었다. 또 소비자의 94%가 혈관 건강에 ‘좋은 지방’(불포화 지방)과 ‘나쁜 지방’(포화 지방)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부수 효과도 얻었다. 캘리포니아 호두협회 관계자는 “미국인의 47%가 호두에 건강강조 표시를 허가한 사실을 알고 있다”며 “지금은 열량이 높은 기피 식품이 아닌 웰빙 식품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93년 ‘특정 보건용 식품(FOSHU)’ 제도를 도입했다. 건강 효과가 인정된 제품에 대해 ‘특정 보건용 식품’이라는 표시를 허용한 것. 지금까지 승인된 제품은 600여 품목. 식품업체가 후생노동성에 ‘특정 보건용 식품’ 인정을 신청하면 일본 내각부 산하의 식품안전위원회에서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일본 라이프월드워치센터 후쿠토미 후미다케 박사는 “일본에선 ‘특정 보건용 식품’에 대해 ‘건강한 몸’을 나타내는 로고 사용을 허용한다”며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해 호응이 좋다”고 말했다.

 ◆국내 사정은=국내에선 알약·캡슐 형태의 건강기능 식품에 대해선 표시가 가능하다. 그러나 김치·녹차·마늘 등 일반 식품은 막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건강기능식품규격팀 권오란 팀장은 “지난해 말 식품위생법 시행규칙 개정에 따라 일반 식품도 건강강조 표시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허가 절차, 과학적 근거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일반 식품에 대한 건강강조 표시 제도를 시행하려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허가 과정이 투명해야 하고▶국민 정서·업계 입장 등을 배제하고 철저히 과학적 근거에 따라 적부를 판정하며▶건강강조 표시가 허가된 식품이라도 의약품은 아니라는 사실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는 것.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 허석현 국장은 “이를 허가하더라도 해당 건강성분의 섭취 제한량을 식품 라벨에 분명하게 표시, 소비자가 적절한 양을 섭취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메릴랜드주 칼리지 파크=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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