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논리 벗어나는 물가-정부 긴급대책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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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물가 동향도 심상치 않지만 물가 대책 또한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시장 경제의 근본인 가격을 다루겠다는 정책이 갈수록 시장 원리에서 멀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金泳三 대통령의 전화 지시 한 통으로 반 나절 만에 急造되어 나온 물가 대책은,이를테면『가격 인상에는 一罰百戒로 대처하겠다』는「물가 司正」과도 같다.그러나 아무리 서비스요금이정부 발표대로「뚜렷한 인상 요인도 없이」올랐다 하더라도 이를 물리적으로 환원시키겠다는 정책은 명색이 시장 경제를 지향하는 정부가 함부로 내놓을 것이 못된다.이러다간 서비스 요금을 정부가 일일이 정해주어야만 하는 경우가 생기고,그같은 가격규제가 바로 대표적인 정부 규제의 온상으로 지목받을 수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동원된 서비스요금 단속의 수단은 원가부담이나임금상승요인을 찬찬히 따지는 것이 아니라 값을 안내리면 위생 단속을 해 문을 닫게 하겠다는 식의「완력」이었다.이번에도 별 뾰족한 수단은 달리 없을 것이다.
얼마전 서민들을 위한다며 정부는 서울市와 공정거래위원회로 하여금 예식장의 끼워팔기를 단속해 박수를 받았다.그러나 정작 그같은 박수 뒤에는 정부가 예식장 요금을 무려 13년 동안이나 그대로 틀어쥐고 있었다는 창피하기 짝이 없는 가격 규제가 있었다.머쓱해진 정부는 이제서야 올 7월부터 예식장 값을 자율화하기로 한 상태인데,만일 하반기 물가가 불안해지면 언제 또 다시예식장 값을 환원시키겠다고 할지 모르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공산품 값의 통제도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온다는 것이 실증된 경험인데다,세무조사를 물가대책으로 동원하는「행정규제적」 발상은 규제완화를 외치고 있는 현 정부가 마땅히 버려야 할 정책사고다.
정부는 지난 2일의 물가 대책 때만 해도 서비스 업종의 진입규제를 풀어 경쟁을 통한 서비스 요금의 안정을 꾀하겠다며 방향을 제대로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게 된 것은 물론 그같은「正攻法」에도 불구하고 서민 물가의 오름세가 그치치 않고 임금협상이 닥쳐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초 예정에도 없다가 金대통령의 전화 지시에 따라 열리게 된 물가 회의 결과가 만일 최근의「경직된 행정」의 결과라면 물가 문제 못지 않은 문제를 노출 시킨 셈이다.
지난해의「신경제」가 가격억제와 경기부양이라는 모순된 조합으로이루어졌었고 이를 이어 받은 새 경제팀의 성급한「소신피력」이 지금의 물가 난국을 가져왔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그러나 가격통제가 물가문제의 정면돌파수단은 되지 못한다 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역시 낮은 물가는 평소에「안정」을 철저히 염두에 두고 일관성있게 펼치는 정책의 종합적인 결과에서 비롯된다.억제와 현실화를반복한 물가통제 끝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는 잃는 것이 더 많다.
〈金秀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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