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민족이라 못한다" 구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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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결혼해 전남 영광으로 온 필리핀 여성 조세핀(40). 그는 초기에는 한국의 제사 풍습에 익숙지 않은 데다 제사 음식을 만드는 게 서툴러 시부모들과 갈등이 컸다. 그는 "한국말이 서툰 데다 한국 풍습을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주변사람과 어울리지 못해 스트레스가 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같은 민족, 같은 혈연을 워낙 많이 따져 외국에서 시집온 나 같은 사람은 마음이 많이 상했다"고 털어놨다.

영광 여성의 전화 송현희 팀장은 "농촌으로 온 이주 여성들이 한국의 제사 풍습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시부모들이 면박을 줄 정도로 한국인의 민족의식은 뿌리 깊다"고 말했다.

외국인 이주 여성 자녀 20여 명이 재학 중인 전남 곡성군의 한 초등학교. 과거와 달리 한국 아이들이 이주 여성의 자녀를 피부색이 다르다고 놀리고 따돌리는 것은 많이 줄었다. 하지만 이주 여성 자녀가 성적표를 받아 들면 상황은 달라진다고 한다. 한국 아이들이 이주 여성 자녀들을 향해 "동남아 출신 엄마 때문에 너희는 공부를 못한다"며 무시하기 때문이다. 동남아 출신은 열등하다는 잘못된 배타적 민족주의 성향을 아이들도 갖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 출신의 한 여성은 "외국에서 건너와 한국말을 배우기도 벅차기 때문에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것인데도 이걸 민족적인 차이로 매도하는 한국 사람들이 매정하다"고 말했다.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일본 여성들은 "독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우리 애들이 학교에 가기 겁난다고 하소연한다"고 말했다.

박미향 석곡 아동센터장은 "아이들에게 단일 민족의 우수성을 내세우면 이주 여성들의 자녀도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신고된 결혼 건수는 총 33만2800여 건. 이 중 외국인과의 국제결혼은 11.9%인 3만9700여 건에 이른다. 지난해 주민등록상의 외국인 인구도 63만2490명에 달해 대한민국 총인구(4962만4269명)의 1.3%가 됐다. 지난해 한국에 유학 온 외국인 수도 2만2000여 명에 달한다. 이렇기 때문에 '단일 민족'을 얘기하는 것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우옥분(43) 이주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은 "결혼 이주 여성은 한국의 농촌을, 외국인 근로자는 힘든 업종을 지키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며 "이들을 민족의식을 앞세워 차별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천창환.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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