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민들 "대출이자 너무 올라" 비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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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한 일본 여성이 16일 니케이지수 하락을 보여주는 도쿄거리의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도쿄 AP=연합]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높은 금리로 빌려 주는 주택담보대출) 쇼크의 진앙지인 미국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서브프라임 대출금으로 집을 장만한 서민층에서부터 골드먼삭스 같은 최고의 금융기관에 이르기까지 경제 전반이 큰 파도에 휩쓸리고 있다. 일본 정부도 미국의 움직임을 긴장 속에서 주시하고 있다.

◆"대출금 버겁다"=뉴저지주에 사는 교포 이윤경씨는 이번 사태로 타격을 입은 대표적 케이스다. 4년 전 이민 온 그는 "지난해 30년 상환 조건으로 연 6.875%에 50만 달러를 대출 받아 집을 장만했다"며 "매달 원금과 이자 4000달러씩을 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사업이 여의치 않아 대출금 상환이 힘겨워졌다고 한다. 그래서 수년간 이자만 내도 되는 40년짜리 모기지로 갈아타려 했으나 이번 사태로 곤경에 빠졌다. 그는 "이자가 8% 이상으로 오른 데다 대출 심사도 훨씬 까다로워져 돈 빌리기가 불가능해졌다"고 우울해 했다.

주택시장은 불황의 늪에 빠졌다. 공급 과잉으로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마저 끊기게 되자 사려는 기색이 완전히 죽었다. 뉴욕의 부동산회사 프루덴셜 더글러스 엘리만의 돌리 렌즈 부회장은 "20년간 이렇게 빨리 시장이 식는 것은 처음"이라며 한탄했다. 대출금 상환에 짓눌린 주택 소유자가 집을 처분하려 해도 퇴로가 막힌 꼴이 된 것이다.

◆실물경제로 피해 확산=서브프라임 쇼크는 도미노처럼 각 금융 분야로 퍼져나갔다. 이달 초엔 불똥이 우량대출(점보론)로 옮겨 붙어 여기서도 이자가 큰 폭으로 뛰었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점보론 이자마저 며칠 새 5%포인트까지 뛴 경우도 있다"고 보도했다. 직격탄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회사만 맞은 게 아니다. 여기에 투자한 펀드와 투자은행까지 타격을 입었다. 골드먼삭스는 최근 이 회사가 굴려온 '글로벌 에쿼티 오퍼튜니티'(GEO) 펀드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어 3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매쿼리은행.AIG.BNP파리바 은행도 큰 손해를 봤다.

안전한 투자처로 인식되던 기업어음(CP)마저 기피 대상이 되면서 미국의 괜찮은 중소기업들마저 돈을 못 구하는 신용 경색이 발생했다. 대기업은 괜찮지만 흑자와 적자를 넘나드는 한계 기업들은 무더기 도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전체 금융시장의 1%에 불과한 서브프라임 부실이 실물경제마저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경기 비관론이 자연히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과 NBC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68%가 "현 경기는 침체국면" 또는 "내년 경기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월가의 최고급 이코노미스트로 꼽히는 손성원 LA 한미은행장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준금리를 내리는 게 땅에 떨어진 시장 참가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진단했다.

◆일본 당국은 낙관론 내놨지만="아직 시장의 동요가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큰 고비는 넘었다고 본다"(오미 고지 일본 재무상). "일본 경제는 여전히 강한 힘을 갖고 있다"(아베 신조 총리).

일본 도쿄증시의 닛케이지수가 연중 최저치로 떨어진 15일 오후. 일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서둘러 낙관론을 내놨다. 추가 급락한 16일에도 반응은 비슷했다. 하지만 이는 뒤집어 보면 진원지를 미국으로 하는 유럽발 '서브프라임 쇼크'의 파장이 일본에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일 당국에는 현재 두 가지 흐름이 교차한다. 하나는 "일본은 실제 서브프라임 파동과 관련이 없는데 덩달아 피해를 보고 있다"는 시각이다.

오미 장관은 "일본의 금융기관 및 펀드가 서브프라임 관련 상품에 많은 자금이 들어가지 않은 만큼 일본의 금융에 미치는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일본 단기금융 시장에서 서브프라임 충격은 수습 국면이다. 일본의 주요 은행들도 이번 사태 직후 서브프라임 관련 상품에 대한 투자액과 손실 규모를 발 빠르게 공표하고 있다. "큰 손실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미쓰비시(三菱) UFJ파이낸셜그룹의 경우 투자잔액 2800억엔 중 평가손은 지난달 말 현재 약 50억 엔이다. 스미토모(住友) 신탁은행의 경우 서브프라임 관련 투자잔액은 7월 말 기준으로 약 135억엔인데 평가손은 약 2억 엔에 불과했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부실채권 정리에 진땀을 흘렸던 교훈이 아직 뇌리에 각인돼 있어 섣불리 서브프라임에 달려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브프라임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미국 경기가 급속히 가라앉지 않을까 우려한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을 경기회복의 양 날개로 삼고 있는 일본으로선 미국 경기의 하락은 치명적 상황이다. 당장 자동차.전기전자 등 일본의 주력 수출업종은 크게 긴장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빠른 속도로 엔고가 진행하고 있는 것도 걱정거리다.

또 하나 걱정은 전 세계 엔캐리 자금이 증시 폭락으로 일시에 일본으로 돌아 올 경우 환율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시장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신용시스템을 흔드는 개별 은행의 파탄이 아니라 시장 내에서 서브프라임 문제의 소재와 규모를 알 수 없는 데 대한 불안감"이라고 지적했다.

뉴욕=남정호,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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