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세계축구다>9.잠재력 지닌 미국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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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90년 이탈리아월드컵 결승전을 마치고 나는 기자회견장에 있었다.발디딜 틈도 없이 들어찬 기자들은 이제 막 우승팀감독이 된베켄바우어가 들어서자 축하의 박수로 그를 맞았다.
짤막한 소감을 말한 후에 곧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미국팀의 감독으로 간다는데 사실인가』『당신은 미국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데 다음 월드컵때 미국의 전력은 어느 정도 될것 같으냐』등이었다.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는 마치 그시간부터 축구의 무대가 이탈리아를 떠나 미국으로 옮겨간 느낌이었다.
이 당시 독일인 특유의 냉정함을 잃지않은 베켄바우어의 답변이기억에 생생하다.그는『물론 4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다.특히 미국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춘 나라다.
그러나 축구에 있어서 4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 니다.축구는 그렇게 빨리 되는 운동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벌써 4년이 흘렀다.그러나 아직도 미국이 좋은 성적을거둘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70년대에 미국은 펠레, 베켄바우어,크라이프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을 사모으고 치어걸들을 앞세워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관중들을불러 모으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전형적인 미국식의 흥행방법이 축구에서는 실패를 본 것이다.물론 농구.미식축구처럼 많은 득점을 올리는 스포츠에 익숙한 미국의 스포츠팬들로서는 90분을 뛰고도 0-0일 수 있는 축구에 쉽게 빠질수 없었던 것도 한 원인이었다.
이때 미국축구협회는 유소년축구의 중요성을 깨닫고 꾸준히 축구인구 저변확대에 힘을 기울였고 그 결과 지금은 1천만명이 훨씬넘는 많은 청소년들이 축구볼을 차고 있다.
미국대표팀의 감독인 보라 빌루티노비치는 『현재의 미국이 86년 당시 멕시코보다 강하다』고 말하고 있다.
유고의 세르비아출신인 그는 86년 멕시코팀을 8강에 끌어 올린 장본인이기도 하다.물론 86년 멕시코팀에는 세계적인 명문 클럽인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던 우고 산체스라는 걸출한 골게터가 있었고 부인이 멕시코 여자여서 팀을 이끄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후 90년에 코스타리카팀을 맡아 본선무대에 진출했던 빌루티노비치는 이번에 미국팀을 맡아 3회연속 월드컵에 출전하는 유일한 감독의 영예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빌루티노비치 특유의 이런 장담에도 불구하고 축구문화가완전히 흡수되지 않은 미국은 여전히 축구의 신대륙일수 밖에 없다. 그 한예로 ABC-TV는 아직도 축구경기중 광고를 집어 넣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수준이다.그 때문에 이번 월드컵에서전.후반 45분씩 광고없이 계속 중계하는 것은 미국TV에서 기록적인 일로 꼽히고 있다.
또 미국축구협회는 대부분의 선수들을 협회소속으로 사들여 17개월간 합숙을 하고 있다.이것 역시도 다분히 미국적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의 축구인들은 미국의 축구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또 응원을 보내고 있다.그것은 미국이 일본에 이어 또 하나의 큰 축구시장이 될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가진 신대륙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밖으로는 세계 축구인들의 성원을 받고 안으로는 어느나라보다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받으면서도 미국축구의 발걸음이 생각처럼 빠르지 못한 것은,베켄바우어가 말했듯이 축구는 그리 빨리되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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