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세계축구다>8.사공 많으면 敗神 손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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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90년 이탈리아월드컵 영국과 독일의 준결승전에서의 얘기다.
경기가 열렸던 밀라노 경기장의 입구에 들어서자 독일기자 몇명이 몰려나오면서 믿을수 없다는듯 고개를 흔들었다.내용인즉 리틀바흐스키가 오늘 최전방 공격수로 뛴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일본 J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당시 바흐스키는 독일대표선수중 가장 작은 선수였다.더구나 대회에 임박해서는 그리 좋은경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던터라 체격이 좋고 제공권이 뛰어난 영국수비들에게「땅꼬마 리티」(리틀 바흐스키의 애 칭)가 가당하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그는 아주 심하게 구부러진 안짱다리를 가진 선수답지 않게 기술이 뛰어나고 영리한 선수다.그날 그는 기가 막히게 경기를 잘했다.그리고 독일은 연장전 끝에 승부차기로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감독인 베켄바우어는 자신의 예감이 적중한 것을 기뻐했고 리티는『경기전 감독이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때 나는 이미 자신감이 있었다』면서 결승전에도 꼭 뛰고 싶다는 자신의 희망을 숨기지 않았다.
감독이 예상 밖의 어떤 선수를 투입해서 성공했을때 그 기분은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다.더구나 잘못될 것처럼 보이는 엉뚱한결정이었다고 해도 결과만 좋으면「기가 막힌 용병술」로 둔갑을 해버리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런 베켄바우어도 86년 멕시코대회때 아르헨티나와의 결승전에서는 아주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마라도나는 아마도 이 대회에서 자신의 생애중 가장 화려한 경기를 보여주었을 것이다.그때 그는 축구선수가 아닌 예술가였다.
이런 마라도나를 과연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천하의 베켄바우어로서도 잠을 이룰 수없을 만큼 결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팬들도,세계의 매스컴도 모두 숨을 죽이고 그의 결정을 주목하고 있었다. 마테우스였다.당시 그는 브라이트너의 뒤를 이어받은 독일의게임메이커였고 점점 빛을 잃어가던 루메니게의 뒤를 이은 간판스타였으며 프리킥,코너킥을 도맡아 차는 비중있는 선수였다.
결과는 실패였다.물론 전력상 아르헨티나는 독일보다 우세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마치 마테우스의 기용미스가 결정적인 패인처럼요란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지난 11월 월드컵예선이 끝나자 한국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예선전에서 두번씩이나 최우수선수로 뽑힌 辛弘基를 미우라만 따라다니게 한것이 결과적으로 일본에 지게 만든 것이라는 얘기였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그러나 그것 때문에 우리가 진 것은 결코 아니다.선수들 스스로 그날 경기가 너무 부담스러웠다고 말한다.내가 보기에도 선수들의 몸이 무거워 보였었다.
세계 어디에도 축구에는 사공이 많다.지고나면 무언가 그 이유를 끄집어 내야만 전문가인 것처럼 믿는 강박관념때문에 사공은 더욱 많아진다.
물론 감독의 잘못 내려진 결정때문에 지는 경우도 많다.그러나이유없이 지는 경우도 너무 많다.그것은 경기내용으로 승패가 갈리는 것이 아니라 골하나로 결정되는 축구의 특성때문에 더욱 그렇다. 베켄바우어가 마테우스를 기용한 실패는 그 다음 대회에서곧 바흐스키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예선전에서 경험했던 우리 대표팀의 작은 실패역시도 본선대회에서는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감독이 소신을 갖고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우리모두 성원을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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