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에서>노동의 새벽.아가씨와 건달들,노래극 참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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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26일 오후2시.
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 지하연습실.
1백평 남짓한 공간을 가득 메운 젊음의 열기와 함성이 바깥의찬바람을 잊게 만든다.풍물악과 양악이 뒤섞여 내는 빨려들 듯한樂音에 맞춰 40여명의 젊은이들이 소리를 모으고 몸짓을 맞춘다. 2월1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막이 오르는 노래극『노동의 새벽』공연을 앞두고 이날 출연진이 가진 시연회.
정부가 운영하는 문예회관이 이른바「운동권 극단」에 대해서도 문호를 개방함에 따라 처음으로 대극장 공식무대에 서게 된 노동극단 현장(대표 박인배)의 시연회는 그 자체로 흥겹고 신명나는한판 무대였다.
10곡의 독창과 19곡의 합창이 때론 신나게,때론 애절하게 이어지면서 노동대중의 건강함과 애환을 노래했고 곳곳에 담겨 있는 익살.해학은 전통적 우리 정서를 잘 담아내고 있었다.
노동자와 자본가간의 대립이라는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극은 재미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경주교도소에 수감중인 노동시인 박노해의 시집『노동의 새벽』을 연극으로 만들어 朴씨가 처음 공연한 것은 민주노동운동의 열 기가 한창 고조됐던 88년.그러나 그동안의 민주화.냉전종식등 시대변화를 반영,초연 당시 내용중 3분의1 정도만 남기고 완전 개작했다는것이 朴씨의 설명이다.단순한 투쟁사례극에서 벗어나 현실의 삶에바탕을 둔 건강한 대중극으로 재구성 했다는 것.
최근 연극계의 대외개방. 상업주의 추세 속에 朴씨가 이 작품에 걸고 있는 기대는 크다.
『우리 연극이 살아남는 길은 우리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우리 이야기,우리 몸짓,우리 목소리로 우리 식의 연극을 만드는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그래서 그는 뮤지컬이란 말을 안쓴다.
대신 노래극을 고집한다.
25일 오후7시30분.서초동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화제의 뮤지컬『아가씨와 건달들』을 보러온 관객들이 2천3백석의 홀을 가득 메웠다.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대형 뮤지컬이라는 이 작품은 연극은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최대한 충실했다.무대의 화려함과 극적 완성도도 괄목할만한 것이 었다.
이 뮤지컬이 미국작품이며 브로드웨이를 원형으로 모방했다는 사실은 비싼 돈을 내더라도 한편의 잘 된 뮤지컬을 즐기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듯 했다.본격 상업주의연극의정수를 본 것이다.
관객을 끌기 위해 벗기기를 일삼고,TV스타를 동원하는등 동숭동 일대에서 성행하고 있는 저질 상업주의에 비하면 차라리 내놓고 상업주의를 표방하면서 質.품격을 추구한 이번 작업은 오히려평가받을만하다.
문화는 다양성 속에서 발전한다.
본격 상업주의뮤지컬도 있어야 하고 민족정서에 충실한 노동극도있어야 한다.서로 배타적이지 않고,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수 있어야 한다.
『아가씨와 건달들』을 보면서 재미와 감동을 느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노동의 새벽』을 보면서도 틀림없이 같은 재미와 감동을느낄 수 있을 것이다.
〈裵明福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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