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열리면 몰리는 「로비손님」/「노동위사건」 계기로 본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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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증인제외·이권청탁등 명목도 갖가지/“부정은폐” 겨냥 국감때 절정
노동위 돈봉투사건의 파문이 확산되며 의원들에 대한 로비실태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개혁과 사정을 내세운 새정부 출범이후 처음 터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의원들에게 검은 돈이 전달되는 불법적 로비가 근절되고 이익집단의 견해는 공개적으로 떳떳이 반영될 수 있는 체제가 마련돼야 한다는 언론도 높아지고 있다.
◇로비실태=의원로비는 이익집단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국회의 법안·예산 심의과정에서 적극 반영하려는 경우와 이번 사건처럼 부정·불법 등을 무마하기 위한 사례로 대별된다.
의회로비는 보통 연중내내 진행된다고 볼 수 있으나 특히 법안과 예산심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정기국회와 이번 사건처럼 기업 등의 문제점과 감춰진 치부가 대거 폭로되는 국정감사를 전후해 집중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로비에는 경부고속철도사업 등 대형 국책사업이 늘어나면서 외국기업까지 가세하고 있다.
○외국기업도 가세
국회가 열리면 의원회관과 상임위 회의장 복도에는 국회직원·공무원이 아닌,방문증을 패용한 외부인사가 들끓는다.
회의장 복도에는 일반회사 간부들이 나와 관련사항에 대한 추이를 지켜보며 무선전화기를 들고 연락을 취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율곡사업은 천문학적인 예산액수만큼이나 여야 의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로비 징후가 뚜렷이 나타났다.
국방위의 모여당 의원에게는 동향인 모재벌그룹 총수 부인이 수시로 연락을 취해 『업체선정에서 탈락하지 않게 해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고 이 의원은 이 그룹 소속회사의 국회 출석조사를 반대하는데 앞장섰다.
국방위의 모야당 의원도 당의 방산업체 국회출석 조사방침과 달리 이를 반대하여 동료의원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국방위에서 실시한 방위산업체 현장조사에서 모야당 의원이 공세를 취하자 그의 고교 선배인 업체그룹 총수가 『그런 식으로 발언하면 안되는데…』라며 노골적으로 역정을 내 동료의원들의 의아심을 자아내기도 했다. 상공위에서는 국감기간중 야당 중진의원 인척회사의 라이벌기업에 대한 융단폭격식 성토가 그치지 않았다.
○동료 눈총도 받아
경부고속철도 수주전에서 프랑스 TGV에 진 독일 지멘스사는 민주당을 통해 자기부상열차의 우수성,기술제공과 차량가격 대폭할인 등을 내세우며 막판뒤집기를 시도하고 있다.
지멘스사는 지난해말 교체위원 전원을 독일에 초청했다. 독일에서 수학한 모의원에게 변호사를 보내 자기부상식 열차의 우위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기도 했다. 지멘스사는 교체위 의원들의 그간 회의발언과 성향 등을 치밀히 파악해놓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 교체위는 이달말 독일 ICE와 프랑스 TGV를 모두 방문시찰할 예정이었으나 최근 슬그머니 취소해 노동위 사건의 여파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보사위 의원들은 지난 정기국회에서 약사법 개정을 반대하는 약사들과 통과를 주장하는 한의사들 사이에 끼어 집중 로비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학 운영에 있어 예산·인사 등 재단의 권한을 대폭 축소한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제출해놓은 민주당의 교육위 의원들은 사학과 관련된 인사로부터 시달림을 받고 있다.
교육위 의원들에게는 『체육교사 대신 양호교사가 학교보건과목을 맡게 해달라』는 주문에서부터 『동네 속셈학원에서 제발 영·수를 가르치지 못하게 법규를 정비해달라』는 영·수 학원의 요구에 이르기까지 로비가 쇄도해 왔다.
◇문제점=법안을 상임위에서 소위원회를 구성해 비공개로 심의하는 현행 제도는 불법로비의 여지를 만들어준다. 의원윤리규범도 91년 제정이후 사문화되어 있는 실정이다. 국회윤리위 또한 14대 대선 당시 이종찬의원이 정주영씨로부터 50억원을 받았다는 설에 뒷짐만 지는 등 유명무실하다.
○로비 공식화 필요
◇대책=이번 노동위 사건과 같은 경우 즉각 국회 청문회가 열릴 수 있도록 윤리규범과 윤리위의 역할이 강화되고 규범에 저촉될 경우 벌칙을 강화하는 강제력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와함께 PAC(Political Action Committee)라는 공식 로비기구를 통해 집단의 의견을 반영하는 미국 등처럼 각 이익단체의 견해를 공개 수렴하는 틀을 새로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하고 있다.<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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