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두 전 대통령 신정연휴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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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씨 “보고싶지 않다” “비교하지 말라” 노씨/관계 불편했던 6공 인사 대거 전씨 방문
서울 연희동 전두환(2동)·노태우(1동) 전 대통령집의 신년 분위기는 몇가지 차이가 있었다. 두집 모두 전직 또는 현직 각료,민정계 의원,청와대 수석,군고위장성과 군후배 등 지인들의 세배방문으로 붐비긴 했다. 그러나 규모와 구성원의 성격이 많이 달랐다.
전씨측은 하례방문의 내용을 적극 공개했다. 이틀간 1천1백여명.
주목할만한 그룹은 얼마전까지 전씨의 시선이 곱지 못했던 6공 인사들,서동권·배명인 전 안기부장,정해창 전 비서실장을 비롯한 안교덕·최병렬·정구영·김유후·김재열수석 등 청와대팀이 다녀갔다.
전씨가 미워했던 박철언의원(수감중)의 부인 현경자씨가 자녀손을 잡고 찾아왔다.
또 이문석·김진영·구창회·신말업·조남풍씨 등 전직 군거물들도 다녀갔는데 노 전 대통령의 9·9 인맥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민정계 전 현직 의원들은 대부분 전씨집을 찾았는데 특히 권익현 전 민정당 대표와 채문식·박준규 전 국회의장도 들어있었다.
노 전 대통령도 비슷한 성격의 세배방문단을 맞았으나 규모는 훨씬 작았다. 두집을 다 다녀온 한 인사는 『노씨집이 절반정도』라고 전했다.
노씨측은 규모나 방문객 이름을 일절 밝히지 않았다.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문이었다. 한 측근은 『올 사람은 다왔다』고 했다.
전·노 두 전 대통령은 2일 오후 연희동 자택을 찾은 중앙일보 기자들에게 자신들의 화해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거침없이 말했다.
『나는 언제든지 만날 준비가 되어있다. 「윗동네 그분」이 결정할 문제다. 못 만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노씨).
『만약 그 친구가 찾아온다면 그때 상황을 봐서 만날 것인지를 결정하겠다. 하지만 만나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배신한 친구가 다시 원래 그 사람으로 돌아오기 전에는…』(전씨).
노씨는 시종일관 전씨를 『전임자』 또는 『윗동네 그분』이라고 표현했다.
노씨는 자신을 전씨와 비교해 「평가절하」하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선 심한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고생을 많이한 전임자의 명예가 회복되는 것은 바람직하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를 올리려 나를 일부러 낮추는 시도는 좋지 않다.』
노씨는 자신의 스타일로 보아 흔치 않게 중요한 반론을 제시했다.
『내가 소신없고 능력없다고 얘기하는 이들이 있는 모양인데…. 내가 그렇다면 전임자가 나를 어떻게 5공 상황에서 그토록 중요한 체육·내무장관,올림픽준비위원장을 시켰겠는가. 그런 왜곡된 시각은 역사의 올바른 평가에 도움이 안된다.』
전씨는 차라리 감정을 폭발하려는듯 격렬했다.
『노 전 대통령이 만나자고 하는데 왜 거부하느냐』고 묻자 『마누라보다 더 아꼈던 친구가 배신했다면 보고 싶은 사람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백담사에서 응어리를 풀고 내려오지 않았느냐』고 되묻자 『부처님도 좋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말라고 했다』고 선을 그었다.
전씨는 「친구의 배신」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 사람은 88년 대통령이 되더니 완전히 달라지더라. 딴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옛날엔 안 그랬는데…. 그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다시 옛날의 친구관계로 돌아갈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하자 전씨는 『오해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그의 얼굴을 당장 보기는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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