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보호막」… 냉혹한 적자생존(경제 본격개방시대: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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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공산품 수출 우선정책 수정 필수/농업·서비스 선진화 함께 이뤄야
7년동안의 대장정을 이끌어온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의 타결은 우리나라가 전방위의 개방경제시대를 보호막없이 맞게 됐음을 의미한다.
이제는 들판의 농부도,구멍가게의 10대 소녀 점원도,공사판의 잡역 노무자도 국제경제의 흐름과 호흡을 같이하며 자기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된 그야말로 「열린시대」를 맞은 것이다.
UR협상은 각국의 경제단위들이 그동안 자국 정부로부터 받아온 각종 지원책들을 모두 벗어던지고 95년부터 알몸으로 국제경쟁의 전장에 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적 약자인 중소기업이나 농민이라고 해서,또는 특권계급이라고 해서 보호해줬던 제도와 관행을 없앨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UR협상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지원축소와 기업 등 민간경제단위간의 세계적 자유경쟁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다.
국제경쟁에 의한 적자생존이 새 국제경제질서의 논리일 수 밖에 없으며 각 경제단위들은 품질과 좋은 가격으로만 생존여부가 결정되게 된 셈이다.
UR협상은 공산품과 농산물,금융·통신 등 서비스,지적재산권 부문의 관세·비관세 장벽철폐와 국제교역의 심판역할을 할 새 무역규범 제정,정부 조달시장의 개방 등 광범위한 분야를 망라한 「국제무역 헌법」이어서 우리 경제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품질·값으로 승부
이 협상타결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이 지난 50년간 추구해온 세계무역의 자유화가 완성단계에 왔음을 말하며 21세기 무역의 기본틀이 마련된 것이다.
UR는 우리에게 쌀시장 개방이라는 「극약처방」을 강요,큰 시련을 주고 있지만 크게 봐서는 세계경제의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데 대부분의 경제예측기관이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90년대를 횡행한 강대국의 보호무역주의를 견제하고 각국의 무역장벽을 없애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UR 이후에는 세계교역의 확대와 경제성장 회복이라는 열매가 맺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산업연구원 등은 수출에 경제를 기대고 있는 우리나라도 공산품 분야에서는 수출확대 등의 과실을 따먹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쟁력이 약한 농업과 서비스업쪽에는 산업의 위축 등 피해와 「눈물」이 예상돼 관련 산업의 구조조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공산품 제조업만이 살 길이라는 지난 30년간 우리의 성장 신화는 수정되어야 할 일대 전환점에 서게 된 것이다.
○의식도 국제화를
특히 농업과 서비스업 등 두 부문은 사실상 나몰라라 했던 경제전략의 재검토가 없으면 우리 경제 전체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것이 틀림없다.
산업연구원 최낙균박사는 『UR이후의 정책방향은 긍정적 영향을 받는 부문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행정 및 제도적 뒷받침을 하는 것과,부정적 영향을 받는 부문의 활성화대책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함께 UR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요청되는 것은 우리 국민의 생각과 관행을 국제화하는 것이다.
홍콩의 한 컨설팅회사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과거 역사의 악몽탓인듯 아시아 10개국중 민족주의 내지는 외국인 공포증이 가장 심한 나라다.
관료와 국민 모두가 갖고 있는 외국인 혐오증은 국내 외국인 투자의 감소라는 마이너스 효과외에 국제화 수준에서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신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국제화면에서 전체를 1백으로 할 때 30점으로 아시아 경쟁국중 최하위였다.
외국기업 투자를 유치해야 첨단기술을 받아들이고 우리에게도 부가가치가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외국기업 유치를 위한 인센티브 제공에 국회의원조차 『왜 특혜를 주느냐』는 반응이어서는 UR 시대를 극복해 나가기 어려운 것이다.
그 다음으로 해야 할 것은 제도·법령의 국제화·선진화다.
이는 정부의 몫이며 무역과 산업·금융 등 각 부문에서 경쟁제한적이었던 제도들을 국제규범에 맞게 시급히 손질해야 한다.
UR 협상내용과 직결되는 산업보조금,지적재산권,반덤핑,긴급수입제한,투자제한 등 규정부터 국제규범에 맞도록 고치고 명료성·객관성을 갖게 해야 한다.
○시급한 제도정비
또 경제기획원 당국자가 말하듯 토지·자본·인력·사회간접자본·정보서비스 등 각종 생산요소를 국제수준에서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
파격적인 정부규제의 완화 역시 급한 과제다. 특히 산업의 병참 지원부대이기는 커녕 군림하며 관실 따먹기에 안주해온 금융의 폐쇄성이 쇄신되도록 하는 특단의 조치가 요청된다.
박웅서 삼성석유화학 사장은 『경쟁력에는 기업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이 있으나 우리 기업은 반쪽만의 경쟁력으로 싸워왔다』며 『시대의 변화를 모르는 외환관리법 개폐 등 규제완화로 민간의 활력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 등 각 경제단위도 다시 태어나야 한다. 국내 시장개방을 계기로 들어오는 외국기업들로부터 선진기법을 빨리 배우고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를 쇄신해야 한다.
보호조치로 인해 보장됐던 시장은 더이상 없기 때문이다.
UR를 경제도약의 계기로 만드는데 모든 경제주체들이 지혜를 모아야할 시점이다.<김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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