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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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1부 불타는 바다 어머니,어머니(54) 풀이 시드는구나.돌을 모로 세워 가지런히 둘레를 만든 화단을 바라보며 지상은 혼잣말을 했다.가을이니까.때가 되면 풀도 시들고,씨앗들도 떨어지고 그러는 거겠지.풀이나 나무는 틀림이 없으니까.
점심시간이었다.숙사 식당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나서 지상은화단이 있는 뜰에 나와 앉아 있었다.
어제는 그의 눈치를 보며 아무 말이 없던 장씨가 지상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소박디기도 아니겠고,청승맞게 이라고 앉아서 머하고 있노?』『사람은 사람을 속여도 풀은 속이는 법이 없다,그런 생각하고 있지요.』 『앗따.야가 볼타구니를 몇 번 줘질르키더니,영 맛이간 소리만 하고 있네.오카다 주먹이 맵기는 매운가 보네.』 옆에 와 앉으며 장씨가 물었다.
『그 일은 우에 된 일이가?』 지상이 피식 웃었다.
『설 된 밥 묵었나.실없이 웃기는.』 『뭐 그런 걸 다 물으시나 싶어서요.』 『와? 내는 좀 알문 안 되나? 니 머 내한테 말 몬 할 비밀이라도 있나?』 『별 소릴 다 하시네요.』 『그란데,말 모할게 뭐가 있나?.』 『할 말이 있어야 하지요.
턱이 늘어지게 맞은 거면 그걸로 족하지 또 무슨 할말이 있겠어요.』 『내가 말이다.쪼옴 안 좋은 소리가 들리서 하는 말이 아이가.맴에 접어 두고 하지 말고 듣그레이.니 거 일본 가시나좋아하나? 사무실에서 일하는 고 쪼만한 가시나 말이다.』 눈을둥그렇게 뜨며 지상이 박씨를 바라보았다.사무실의 쪼만한 가시나라니.요시코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이젠 또 어쩌자고 이런 소문이 나는가 싶어 지상은 벌렁 들어올려져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장씨의 들창코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조선사람들 사이에도 그런 말들이 돌았다면 이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그런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쳐갔다.
『이눔아야,조심하거래이.니 그라다가 큰 코 다친대이.』 입을쩝쩝거리며 박씨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섰다.멀어져가는 장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지상의 눈길이 힘없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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