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수술 필요한 유통구조(쌀개방 이겨내자: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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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시장기능 무시… 정부는 적자 농민들엔 미흡/쌀수매/중간마진율 너무 높아 생산·소비자만 손해/농산물/2중곡가 폐지·출하단계 축소 절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타결은 일종의 보조금으로 간주될 우리나라의 추곡수매제도와 낙후된 농산물 유통현실에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매년 벼 수확철이 다가오면 정부와 농민들간에 「올해는 또 쌀을 얼마나 비싸게 사서 얼마나 싸게 팔아야 할 것인가」라는 격정과 「올해는 정부가 얼마만큼의 쌀을 수매해줄까」라는 기대가 팽팽하게 맞서왔다.
추곡수매가와 수매량을 둘러싼 여야의 대립은 올해도 예외가 아니어서 또다시 정기예산 국회를 한때 파동으로 몰고가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73년 물가안정과 공급난 해소를 위해 이중곡가제가 시행된 이래 시장에 의한 자유로운 유통구조가 왜곡돼 왔다.
일본은 80년대 중반부터 정부미 대신 자주유통미 유통을 확대해 시장기능을 살리는 정책으로 돌아섰지만 우리 정부는 지난해까지 국민 1인당 15만원꼴인 6조9천억원의 양곡관리기금 누적적자와 1천3백26만섬의 재고를 안겨준 이 제도를 지켜왔다.
○빚 총 6조9천억
그러나 물가억제를 담보로 정부가 산지가격보다 30% 정도를 비싸게 사서 다시 30% 싼 가격에 파는 이 양정제도도 이제는 도마위에 올려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쌀에 있어서 그동안 왜곡된 유통구조는 정부·농민·상인·소비자 모두에게 손해를 입히는 결과가 됐다.
지난해만해도 정부는 80㎏ 가마당 산지가격이 9만8천34원인 쌀을 12만6천3백60원에 사들여 9만6천6백원에 방출,1조3천8백억원의 적자를 냈다. 농민들은 전체생산량의 20∼25%에 불과한 정부수매량이 낮은 가격에 방출되는 바람에 농가소비분을 제외한 나머지 60%의 쌀도 이 가격을 기준으로 시중에 팔아야 한다.
소비자는 정부가 품종구분없이 일괄 구매하고 쌀값을 물가관리대상으로 규제해 질좋은 쌀을 구하기 힘들었다. 양곡상들은 낮은 정부방출가로 보관비도 건지기 힘든 쌀유통을 점점 기피하는 실정이다.
○「신농정」 실효의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김명환박사는 『앞으로 서비스시장이 개방되면 쌀도소매업도 개방되므로 쌀의 유통에도 시장기능이 빨리 되살아나야 한다』며 『상인·생산자를 포함한 민간에 가격결정기능을 넘기고 정부는 소득정책에 힘써야 할때』라고 말했다.
정부도 뒤늦게 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계절별로 쌀값에 진폭을 두고 산지에 미곡종합처리장을 설치하는 내용의 시장기능 활성화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같이 「신농정」에서 제시한 생산자 주도의 시장·유통혁신 방안은 현재의 농업관련기관 등의 비효율성 때문에 실효를 거둘 수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문제를 거론할 때 쌀을 제외한 나머지 농산물의 유통현실도 문제가 산적해 있기는 마찬가지다.
농수산물 유통공사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무의 경우 유통마진율은 85.6%에 달하고 있으며 배추는 79.8%,마늘·양파가 40∼60%에 이르고 있다.
유통서비스의 질이 높아서 마진이 높다면 다행이나 산지의 유통시설이 영세하고 복잡한 유통단계 때문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배추 1포기가 거치는 유통단계는 농민­산지수집상­위탁도매상­중간도매상­소매상­소비자 등 많게는 6∼7단계를 거친다.
농산물유통공사 유통교육원의 윤삼중교수는 『중간마진을 줄이려면 농협 등의 생산자단체가 산지에 들어가 영세농민의 농산물을 제값을 주고 사서 포장·출하하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생산자조합이 산지집하장을 운영하며 농민을 대신해 도매시장에 출하하거나 직접 가공하는 방식으로 부가가치를 높여 농민소득을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보시스팀 필요
농산물 유통구조개선을 위해서는 ▲정부주도의 생산자·구매자간 유통정보시스팀 구축 ▲농산물 전문소매상의 육성 ▲대규모 집배센터 등 도매시장 확대 ▲물류비용 절감을 위한 파레트(하역운반용 화물적재판) 시스팀 도입 등도 시급하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성배영박사는 『유통분야는 시설·장비만으로 되지 않고 관행과 제도까지 바뀌어야 하므로 하루 아침에 개선되지 않는다』며 『정부·농민·소비자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박승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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