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환희와좌절>3.축구대표 수문장 최인영의 악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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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93년10월25일은 내 축구인생에서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않은날이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카타르 도하의 칼리파스타디움.
94미국월드컵축구 아시아 최종예선전에 출전한 우리는 1차전에서 이란을 3-0으로 대파했으나 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와 아깝게비긴후 이날 일본과 맞닥뜨리게 된것이다.
우리는 솔직히 일본은 아직 한수 아래라는,자신감인지 자만심인지 모를 기분으로 일본전에 임했다.
그러나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낸 일본선수들의 눈빛이 예전과 달랐다. 일본 주장 하시라타니는『우리 모두 운동장에서 쓰러져 죽자』고 외치고 있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일본의 기세에 눌렸고「이러면 안되는데」하면서도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선수중 최고참인 나는 허둥대는 후배들을 보면서 목이 터지도록소리를 질러댔다.
『침착해라』『밀리지마라』『뛰어라』 그러나 이미「한번 해보자」는 의욕을 상실한듯 후배들의 몸놀림이 둔해졌고 나는 안타까워 발만 동동 굴러야했다.
몇차례 위기를 넘기면서 겨우 0-0으로 전반전이 끝나자「무승부라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우러나왔다.
나의 이 소박(?)하고도 창피한 소망은 후반15분 결국 깨지고말았다.
왼쪽에서 날아온 센터링은 洪明甫의 키를 넘었고 나카야마가 질풍같이 뛰어 들어왔다.그 뒤로 朴正倍와 미우라의 모습이 보였다. 각도를 줄이기위해 앞으로 뛰쳐나가는 순간 나카야마가 헛발질을 했다.
의도적인 헛발질이 아니라 분명 실수였다.
볼은 옆으로 흐르는데 어느 틈에 왔는지 미우라의 모습이 어른거리더니 골네트가 출렁거렸다.
한동안 일어설수가 없었다.너무도 억울하고 분했다.
『이젠 도리없다.한골을 더 먹더라도 총공격으로 실점을 만회하자.』 나는 다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드디어 2분후 河錫舟가 일본 GK 마쓰나가와 1대1로 맞서는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슛』소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석주의 슛은 마쓰나가의 발에 맞고 퉁겨나갔고 순간 「틀렸구나」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허탈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본선 3회 연속 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루긴했지만 그것은 한없는 좌절속에서 얻은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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