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시계공장,막대한 이윤 분배놓고 노사분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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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90년 사유화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市 교외의 페트로드보레츠 시계공장은 최근 아무도 예상못했던 혼란에 빠졌다.
다른 러시아 기업들처럼 시장경제원칙에 적응하지 못해 재정상태가 더욱 악화됐기 때문이 아니다.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다.국영기업시절 적자투성이이던 이 공장이 지난해 히트상품을 내놓으면서갑자기 막대한 이윤을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
우선 이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놓고 공장 경영진과 노동자들은 격렬하게 대립했다.
경영진은 이 돈을 설비재투자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반면노동자들은 경영자들이 자신들을「착취」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윤의 공정한 분배를 요구하고 나섰다.사회주의 체제에서는 생각조차 못했던 노사분쟁까지 발생한 것이다.
또 공장수익증가 이후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공장진료실을 찾아 불면증을 호소했다.노이로제 증상을 보이는 환자도 수십명에 달했다. 진료원장인 라리사 알미츠는『진료실을 찾는 노동자들은 겁에질려 있었다』며『다른 공장처럼 계속 적자를 보고 있었다면 이런문제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해 돈 버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이곳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 모든 법석은 페트로드보레츠 시계공장이 새로운 손목시계를 개발,지난해 시장에 내놓으면서 시작됐다.이 손목시계는 원래 시력이 나쁜 사람들을 위해 개발됐기 때문에 크기도 클뿐 아니라 사용자가 알아보기 쉽게 시계판의 아라비아 숫자 대 신「0」을 써넣었다.
처음에 몇개 팔리지도 않던 이 시계는 판매사원들이『0은 페레스트로이카의 새로운 출발을 상징한다』며 새로운 홍보전략을 펼치며 판촉에 나서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주문이 밀리기 시작했다. 이후「페레스트로이카 시계」라 이름 붙여진 이 시계는 지난 한햇동안 해외에서 2백만개가 팔려 8백50만달러의 매상을 올렸으며 러시아 국내에서도 연간 3백70만개가 팔리고 있다.
덕분에 이 공장의 올해 순이익은 50만달러.액수로 치면 우리나라 웬만한 중소기업의 실적 정도지만 러시아의 작은 시계공장으로서는 엄청난 수확이다.이 돈이 결국「불행의 씨앗」이 된 셈이다.이윤을 놓고 줄다리기가 계속되자 사회주의체제에 서 한 식구로 사이좋게 지내던 노사 양측은 서로 불신만 깊어지게 됐다.
평생 페트로드보레츠 공장에서 일해온 블라디미르 키리로프(56)는『사회주의 시절엔 어느 간부에게나 가서 어려움을 호소할 수있었다』고 회상하면서『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나를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놓고 찾아갈 수도 없다』 고 달라진 상황을 설명했다.
경영진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다.경영합리화 측면에서 필요없는 노동자들을 해고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해고된 노동자들이 앙심을 품을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페트로드보레츠 공장은 오늘날 자본주의로 전환하려는 러시아의 몸부림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李碩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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