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있는고향>가야황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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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우수수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떨어진다.만추의 정취가 한껏 느껴지는 오후 단골 칼국수집에서 마음의 점을 찍고 우정 가을 거리를 한가로히 걸었다.까치밥으로 빨간 감이 몇 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감나무 가로수길을 지나다가 아는 이와 만난다.함께허리 구부려 땅에 떨어진 잎새를 주워『하이네시집』책갈피에 끼우는 순정을 즐긴다.쑥스러운듯 천진한 웃음이 배싯 배어 나온다.
파란 가을 하늘이 짐짓 장년의 주책을 놀리는 듯하다.붉어지는 얼굴 서로 바라보며『우리 차나 한 잔 할까요? 좋지요.』 식후에는 역시 우리 차가 좋다.물론 녹차를 말함이다.그렇지만 기름진 음식을 먹었을때는 중국 사람들이 상용하는 烏龍茶같은 반 발효차의 구수한 미각을 즐기는 것도 괜찮다.녹차의 깊은 맛에 비견할 바 아니나 차내기가 쉽고 황갈색의 톤이 어쩐지 가을과 잘어우러지기 때문이다.우리나라에도 근간 동서식품에서 오룡차를 시판하고 있다.하지만 오룡이 아닌 우리 고유의 이름을 지닌 발효차는 없는 것 일까.
이번주에는 발걸음을 남으로 향해 옛 가락국의 땅 김해를 찾아보자.거기 가야 황차가 있다.이미 시간의 흐름 속에 망각된 과거의 차지만 그를 되살려 오늘 우리의 건조한 생활,거친 문화속에 오롯 자리매김 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가야차 연구가 金鐘侃씨가 그다.아무도 관심두지 않을 때 멋스런 과거,선조들의 여유와 슬기를 복원하는 일은 단순한 기쁨 이상이다.
『金海邑誌』土産條에 의하면 『황차가 金剛谷에서 나며 일명 장군차라고도 한다』는 기록이 있다.현 松岳壇주변에 해당하는 금강곡 야생 차밭에서 자라는 차나무 잎을 채취해 만들었을 황차는 이름이 암시해 주듯 발효차였을 것이다.장군차라는 이명은 후일 고려 忠烈王이 일본 정벌길에 金剛寺에 들러 잠시 가마를 멈추고쉬다가 절뜨락에 온통 그늘을 드릴만큼 우람한 山茶樹가 자라는 것을 보고 여기서 만들어지는 차에 장군차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한다.
김해시와 김해군녹산면 일대에 구전되는 이야기에 의하면 가락국시조 수로왕비인 허황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옥합에 차씨를 담아와 이를 명월산에 심고 후일(서기 144년)明月寺를 창건,이곳에 차를 재배.제조하여 왕실에 헌물로 바치도록 했다고 한다.
이는 김해군장유면무계리의 야생 차나무밭과 유명한 盆城이 있는김해의 진산인 분성산 기슭의 차밭골에 자생하는 1백여그루의 수령이 오래된 차나무를 놓고 볼때 충분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다.
가야황차는 뜨겁게 마실수록 좋다.지방을 분해하는 작용이 뛰어나 동물성지방 과다섭취로 인해 생기는 성인병을 예방하는 효과가있다. 김해에 가면 둘러볼 곳이 많다.가족들끼리 다정하게 손잡고 龜旨峰에 올라 수로왕의 탄생설화를 다시 생각하고 수로왕릉과허황후릉에서는 고개 숙여 예를 표하며 선인들과 만나는 즐거움을갖자.민족정신의 함양은 이런 가운데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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